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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유럽 최대의 사구와 인공 숲의 대서양 해안 도시, 아르카숑(Arca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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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서부 여행 시 꼭 방문해야 하는 곳, 아르까숑(Arcachon)

지중해와 달리 대서양은 이렇게 화창한 날을 매일 맞이하지 못한다.

이번 토요일은 날씨가 너무 화창해 서쪽의 아르까숑(Arcachon)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해서 유럽 최대의 모래둔덕인 "듄느 듀 삘라(la Dune du Pilat)"는 생략하고, 가볍게 바닷가와 시내를 걷다 오기로 했습니다.

 

아르카숑은 보르도에서 남서쪽으로 55km 정도 떨어져 있는(차로 약 1시간 소요) 대서양 연안의 도시로 프랑스인들에 인기 있는 해변 휴양지입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남프랑스와는 다소 다른 매력을 가졌죠.

아무래도 남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은 붉은색이나 흰색의 암벽이 절경을 이루는 화려하고 이국적인 풍경이 많은 반면, 대서양의 풍경은 좀 더 차분하게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듯한 바다와 모래사장, 숲, 온화한 기후를 갖고 있어 폐질환을 가진 이들에게 좋은 환경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남동부에도 몇 년 간 산 경험이 있는데, 남동부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건물들의 색이 더 화려하고 화창한 날이 더 많지만, 안타깝게도 길거리 위생이 다소 좋지 않은 편입니다.

반면 남서부는 길거리에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가 훨씬 깨끗하고 쾌적합니다.

다양한 지역 색이 묻어나는 상점들, 특히 해안 도시답게 수영복, 요트와 관련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많고 굴 전문 등 해산물 레스토랑도 많습니다.


아르카숑의 특징

아르카숑(Arcachon)은 프랑스 남서부 누벨아키텐 지역 지롱드 주의 하위 현에 있는 코뮌으로, 1857년 라 떼스뜨 드 뷰쉬(La Teste-de-Buch) 코뮌의 일부가 분리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유럽 최대 서핑지로 유명한 비아리츠와 함께 가장 인기 많은 대서양 해안 도시 중 하나입니다.

아르카숑 시청
골목 안쪽으로 길게 늘어선 상점과 집들.
아르카숑에 가면 특히 돌과 붉은 벽돌이 교차로 사용된 기둥 장식을 흔히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아르카숑 스타일의 건축 요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통로.

아르카숑에 도착하면 다른 것보다 일단 프랑스의 상징적인 건축물과 사뭇 다른 모습의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고딕, 네오 클래식 스타일의 건축 양식의 건물에 익숙하다가 아르카숑에 도착하면 정사각형 박스와 비슷한 형태의 묵직한 느낌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전혀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아르카숑 건축의 특징

아르카숑 지역의 건축물들은 돌과 붉은 벽돌을 함께 사용하고, 넓은 돌출부를 가진 지붕, 비대칭적인 형태가 특징입니다.

과거 아르카숑에는 결핵 환자들이 많이 왔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아르카숑의 고요함과 신선한 공기로 인해 폐 질환이나 결핵 환자들이 치료와 요양하기에 적합했다고 합니다. 바다도 멀지 않고, 가는 곳마다 푸른 자연이 있어 오늘날도 여전히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하여, 보다 여유로운 삶을 찾아 이곳에 정착하는 중산층 이상의 프랑스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르카쇼네(l'Arcachonnai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아르카숑의 집과 건물들은 신고전주의 양식과 신고딕 양식, 콜로니얼(식민지) 양식, *무어식 양식이 혼합된 웅장한 19세기 하이브리드 스타일로 영국의 빅토리아 건축 양식의 모습을 띱니다.

랑드(Landes)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나타나는 큰 돌출부가 있는 지붕, 회색 외관, 돌과 붉은 벽돌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모서리 장식, 둥근 아치형의 창문, 베란다/발코니 등이 아르카숑 건축 양식의 특징입니다.

참고로 *무어식 건축(Moorish architecture)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이베리아 반도)와 오늘날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즈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화권에서 발전한 이슬람 건축 양식을 말합니다.
무어(Moor)는 중세 이베리아반도에 거주하던 무슬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현재는 이베리아반도로 이주하지 않고 모로코를 비롯한 북서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뜻으로 유럽인들이 만든 단어인 '무어인'을 말합니다.

 

아르카숑의 역사

1857년, 당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는 아르카숑이 자치 지방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제국 칙령에 서명했습니다.

같은 해에 보르도에서 아르카숑까지의 철도 확장이 완료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르카숑은 소나무, 참나무, 딸기나무 등이 자라는 숲에 지나지 않았으며, 도로 연결도 없고 실제 가구 수도 매우 적어 거주 인구는 400명도 채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대부분 어부와 농민이었습니다.

일부 위생학자들이 해수욕을 권장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지역 내 투자자들은 보르도의 부르주아 계층을 비롯한 부유층을 유치하기 위해 세 곳의 해수욕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950년까지 결핵 환자들도 신선한 공기가 있는 자연환경을 제공하는 아르카숑을 찾기 시작했고, 이후 점차 자연 속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아르카숑의 계획된 단지, "빌 디베르(Ville d'Hiver)"

신고전주의 양식, 신고딕 양식, 스위스 샬레, 식민지 시대의 주택 양식, 무어식 양식이 혼합되어 아르카숑만의 독특한 '아르카쇼네' 양식이 탄생하게 되었다.

 

1860년 부동산 사업을 통해 탄생한 "겨울 마을"이라는 뜻의 "빌 디베르 Ville d'Hiver"는 아르카숑에서 고급 거주 지역으로 유명함과 동시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녹지에 둘러 싸인 아르카숑의 빌 디베르 빌라 단지는 여러 지역과 다양한 시대의 건축적 양식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스타일을 차용했습니다.

신고전주의 양식, 신고딕 양식, 스위스 샬레, 식민지 시대의 주택 양식, 무어식 양식에서 받은 영향이 뒤섞여 만들어진 독특한 건축물에서 여전히 풍요로운 과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라 모나리자(La Mona Lisa), 피가로(Figaro), 르 물랭(Le Moulin), 니투쉬(Nitouche), 에펠타워의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이 머물렀던 마들렌(Madeleine) 등 단지 내 집들에 붙여진 이름 속에도 그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위스식 샬레(chalet)의 전통을 따른 돌출된 대형 지붕, 벽돌로 지은 외관, 벨베데레(Belvèdère: 미관이나 풍광을 살리고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목적으로 짓는 건축 구조), 작은 탑, 화려한 목재 발코니와 베란다 등과 같은 건축 요소들이 비대칭 형태로 구성된 집 스타일이 특징입니다.

 

빌 디베르 내 위치한 아름다운 모레스크 공원(Parc Mauresque)

모레스크 공원 입구의 분수 뒤에 있는 흰색 철문 안으로 들어가면 터널 내부에 위치한 승강기를 이용할 수 있다.
아르카숑의 독특한 건축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미니어처 빌라.
동글 동글 귀여운 형태로 다듬어진 장미 나무. 완연한 봄이 아니라 꽃봉오리들이 이제 막 자라고 있는 듯 했다.

빌 디베르 안에 위치한 모레스크 공원은 도시 전체 전경이 위에서 내려다보이며, 아름다운 수목원을 갖춘 평화로운 공원으로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1863년 꽁빠니 듀 미디 철도회사(Compagnie des chemins de fer du Midi)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당시 근처에 있었던 모레스크 카지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카지노는 1977년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그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1879년 아르카숑 지방자치단체로 그 소유권이 이전되었습니다.

공원에는 야자나무, 은행나무, 스위트검사, 바다소나무, 수백 년 된 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과 나무가 있습니다.

1987년에는 공원 내 장미 정원이 조성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장미 600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번에 갔을 때 작은 연못도 보았는데, 4월은 되어야 물도 채워지고 꽃도 화사하게 피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상태일 것 같습니다.

중앙에 보이는 모레스크 공원(Parc Mauresque).


결핵환자들의 치료와 요양을 위한 거주 단지에서 부르주아 집성촌이 되기까지, "빌 디베르(Ville d'Hiver)"에 담긴 흥미로운 역사

 

빌 디베르는 초기에 샬레 형태의 집들로 구성된 스위스의 작은 마을의 형태를 띠다가, 1920년부터 목조 샬레 건물에서 돌과 벽돌로 된 집들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부르주아 계급을 사로잡은 해수욕 열풍과 함께 아르카숑은 매우 인기 있는 해안가 휴양지가 되었습니다.

당시 부유한 보르도의 상인들이 이곳에 기반을 두었으며, 남프랑스의 꽁빠니 듀 미디(Compagnie du Midi) 철도사가 보르도-라 떼스뜨 사이를 있는 철도를 인수한 이후 아르카숑까지 가는 기차는 여름 내내 만원이었습니다.

 

한편 이 철도 회사의 소유주인 보르도 출신의 에밀(Émile)과 아이작 페레이르(Isaac Pereire) 형제는 파리에서 성공적으로 부동산 사업을 펼친 뒤, 그들의 가족이 한 세기 동안 기반을 두었던 이 지역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평소에도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로 번뜩였던 에밀은 연중 내내 자신들의 철도 사업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과 새로운 부동산 사업 시작의 길을 모색합니다.

결국 형제는 여러 사업가들과 함께 보르도와 라 떼스뜨 드 뷰쉬(Teste-de-Buch) 사이의 철도 연결을 이용하기로 했고, 그렇게 대형 목조 샬레로 된 대규모 요양소를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863년 처음 문을 연 샬레는 온 가족과 하인들을 수용할 만큼 충분한 공간을 갖춘 거주지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는 결핵이 만연했고, 결국 아르카숑 도시까지 휩쓸었습니다.

당시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은 1941년에서 1943년까지 치료용으로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여전히 폐결핵 환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에 결핵 환자들에게 좋은 공기와 환경 등으로 요양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춘 프랑스 남동부 꼬뜨다쥐르(Côte d'Azur)에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많이 부는 것으로 알려졌던 대서양 연안에는 이러한 요양지가 전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르카숑의 의료계는 지역의 선원과 수지 작업자들이 열악한 생활과 위생 조건에도 불구하고 결코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관찰해 왔던 터였습니다. 페레이르 형제의 사촌인 의사 페레이라(Pereyra)도 소나무 숲을 건너면 해풍의 힘이 약해지게 되고, 그로 인해 온화해진 해양 기후가 결핵 환자들에게 완벽할 것이라 했습니다.

결국 빌 디베르 빌라 단지는 주변을 둘러싼 소나무들로 강한 해양풍을 최대한 차단하면서, 바닷가 근처에 위치해 언제든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완벽한 요양 단지로 자리 잡도록 기획됩니다.

 

한편 영국식 공원이 조성되고, 외풍을 완전히 막도록 거리와 골목도 곡선으로 설계되는 등 아르카숑의 도시계획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나폴레옹 3세 황제와 그의 부인 유제니 황후와 아들 임페리얼 왕자가 참석한 가운데 큰 규모의 도시 홍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아르카숑을 찾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었으며, 그 명성이 알려지며 환자들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까지 정착할 정도였습니다.

빌 디베르 단지에는 호텔도 들어서며, 부유한 방문객들이 모레스크 카지노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아들 루돌프 3세의 자살 이후 슬픔을 달래기 위해 그랜드 호텔에 묵었던 당시 오스트리아의 황후 시씨(Sissi)를 포함해 유럽 전역에서 다수의 왕족들이 아르카숑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1930년대 대공황까지 한창 번성하던 중 페레이르 형제는 부지를 팔았으며, 그 후 무일푼이 된 사람들이 도시를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며 도시의 부흥기는 결국 내리막길에 접어듭니다. 비위생적인 환경 등 1970년대까지 쇠퇴의 길이 이어지다가 이후 소수의 지지자들의 활동에 힘입어 다시 새롭게 활력을 찾기 시작하며 제2의 부흥기에 접어들었습니다.


2024년 3월 말, 부활절을 앞둔 아르카숑의 모습

올해는 4월 1일 월요일인 부활절 시즌을 기념해 토끼와 달걀을 모티프로 한 초콜릿들.
건물 전체가 덩굴과 꽃으로 뒤덮인 아르카숑의 한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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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함께 길을 걷던 다정한 모습의 한 중년 커플.
선명한 레드 컬러와 중간중간 초록색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활기찬 에너지가 도는 느낌의 집.
"삶을 위한 심장 하나, 사랑을 위한 심장 하나"라는 의미가 담긴 문구 "Un coeur pour vivre, un coeur pour aimer".


랑드 드 가스코뉴(Landes de Gascogne)

유럽 최대의 사구 "듄느 듀 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랑드 숲의 모습. 한국의 경기도 면적에 달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인공 숲이다.

작년 방문했던 듄느 듀 삘라(La Dune du Pilat). 모래 언덕 위에 한참 올라가면 한쪽은 대서양, 반대쪽은 랑드 숲이 내려다 보인다.

랑드 숲 녹지 안에 위치한 아르카숑.

랑드 숲은 다양한 풍경을 제공합니다.

북쪽으로는 보르도 와인 농장이 멀지 않아 소나무와 여러 포도나무가 어우러진 풍경과 더불어 여러 상점과 전통적인 랑드(Landes) 식 집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가스코뉴의 와인 재배 지역인 샬로스(Chalosse)의 푸른 언덕들로 이어지며 멀리 피레네 산맥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꼬뜨다르장(Côte d'Argent)에는 황무지와 같은 내부와 달리 덤불이 자라는 숲이 있는데, 홀름 참나무, 코르크참나무 등의 나무가 있습니다.

한편 랑드 숲은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산불 피해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참고로 가스코뉴(Gascogne)는 프랑스 남서부의 옛 지명으로 프랑스혁명 이전 프로방스(Provence) 지역에 포함되었던 지역입니다.

현재는 아키텐(Aquitaine)과 미디피레네(Midi-Pyrénées)의 두 지역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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