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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외국어, 안 배우면 손해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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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라도 영어든 뭐든 외국어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어차피 AI가 다 통번역 해줄 시대에 왜 굳이 외국어를 배우냐고?

작년 봄 방문했던 프랑스의 페리고르 누아르(Perigord Noir).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도 그 반도 볼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참 넓다.

과거에는 영어를 '적당히'만 할 줄 알아도 직업적 기회나 한 사람의 '스펙'에 꽤나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영어는 단순한 대화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상당한 실력을 자랑하는 고수들도 너무 많아진 시대이다.
즉 영어는 '스펙'이 아니라 사실상 '필수'가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운동과 외국어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최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요즘처럼 춘추전국시대 같은 변화의 시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 가치'를 찾고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나는 운동과 외국어 신봉자이다.

그 어떤 외부적 요인에도 절대 변함없이 나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돈도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몸무게도 늘었다 줄었다 하는 조수간만과도 같은데, 운동과 외국어 공부는 꾸준히 노력하면 하는 만큼 그에 대한 결과가 확실히 보장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어른이라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노력한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가 뭘 위해 그리 노력했나' 하는 순간이 인생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자신의 에너지 투입과 그에 합당한 보상 습득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기리 싸움의 연속이다.

노력을 들였음에도 확실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뒤통수 맞는 경험을 해본 적이 많다면 다른 건 몰라도 운동과 외국어 공부는 그냥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해보라고 하고 싶다.


정보력이 필수인 시대, 외국어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대다수 주요 온라인 플랫폼에서 영어 기반 컨텐츠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인들도 사랑하는 유튜브만 해도 전체 컨텐츠 중 영어가 주 사용 언어인 컨텐츠의 비율이 약 70% 정도에 달한다.

영어는 단지 영미권 국가 사람들만을 위한 언어가 아닌지 이미 오래다.

전 세계 만국 공용어인 만큼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영어를 통해 유통된다.

오늘날 한국어만 봐도 영어의 사용이 점점 더 당연하게 여겨지는 단어들이 많다.

의학, 비즈니스, 마케팅 분야의 용어만 봐도 대다수가 영어다.


직업적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진다

대학 학위는 더 이상 단순히 취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 티켓이지만은 않은 시대가 다가왔다.

과거 학사든 석/박사든 일단 학위를 받고 나면 취직 후 웬만해선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접어들었고, 경제적 이유, 적성에 맞지 않는 개인적 이유 등으로 직업 분야 간의 이동도 예전에 비해 전혀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사실상 <학습-직업 활동-또 다른 학습-직업 활동...> 과정의 n차 반복이 당연해지는 시대가 왔는지 모른다.

즉 대학 교육은 단순히 직업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써 이력서의 한 줄을 더 채워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 활동 중에도 시대의 흐름 변화에 따라 도태되지 않기 위해 중간중간 학습에 다시 뛰어들어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 외국어 공부에 일정 기간 투자한다면, 단순히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분야 불문 직업적 기회의 폭을 더 넓혀볼 수 있다.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력, 상상력을 갖췄다면, 개인의 직업적 능력과 신뢰도, 잠재력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 아직까지 고학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한국보다 해외에 나가 자신의 능력을 더 발휘할 수도 있다.

또는 외국어 능력을 갖춘 뒤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외국인이나 해외 기업을 상대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현재 구직중이거나 휴직 상태라면, 외국어 공부가 또 다른 기회의 문을 향한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Saratique


세상을 '맞고 틀림'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의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게 해준다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더 넓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오래전 영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어학원의 한 미국인 선생님이 "영미권 사람들의 지적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영미권 사람들은 웬만한 나라를 가도 현지인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배우려는 호기심도 잘 안 갖는 이들이나, 자신들의 문화가 전 세계의 기준이라 생각하는 편협한 시야에 갇힌 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우리가 자라면서 수도 없이 들어온 클리셰이지만, 분명 보편적인 진리임은 틀림없다.

과거 영어만 겨우 할 줄 알았을 때 해외여행을 갔을 때에 비해 영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의 여행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방문하는 장소에 담긴 역사적 배경이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 그저 여기저기 내 눈길을 끄는 건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어댔다.

물론 셀피는 아니었지만.

그런데 영어와 프랑스어를 편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여행할 때 눈에 보이는 것들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는다.

 

각 언어는 저마다의 특징 속에 장단점들이 있다.

물론 문법적으로 유달리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언어들도 개중에 있겠지만, 대부분 언어는 저마다 상대적으로 더 쓰기 편한 말이나 표현, 더 논리적인 표현 방법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영어나 프랑스어를 배우고 나서 "기쁘다", "즐겁다"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어휘의 개수만 해도 어마어마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Delighted, excited, elated, over the moon, thrilled, intoxicated 등 무수히 많다.

프랑스어에서는 명사 뒤에 형용사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이게 생소하고 잘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명사 앞에 붙는 수식어가 많을 때는 오히려 그렇게 명사 뒤로 온갖 수식어를 밀어버리는 게 더 편한 것이다.

영어에서의 관계대명사 that, which 등의 사용도 뭔가 낯설었었다.

이제는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글 쓸 때도 전체 구조를 짜는 것에 있어 더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말할 때에는 "I think that..." 식으로 문장을 시작할 때 뒷 내용을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벌 수도 있다.

한국어로는 이미 말할 내용을 모두 정리한 다음에 "...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전체 내용을 동사 앞에 모두 설명한 뒤 마지막에 동사로 마무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미리 전체 문장 내용을 다 머릿속에 구상해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이미 모국어의 언어적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어 새로 배우는 언어가 '이상하다', '불편하다'라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각 언어는 저마다의 매력과 특징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구사하는 민족의 역사를 통해 쌓여온 가치관과 사고방식, 철학 등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그렇게 새로운 시스템과 그 안에 담긴 또 다른 방식의 사고방식, 논리 전개 방식 등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은 관용과 이해심, 개방된 사고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결국 사람은 기계보단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입력값(input)을 매번 입력하거나 말해야 하고, 출력값(output)이 나올 때마다 그 사이의 간격은 여행할 때처럼 단순한 몇 문장으로 구성된 의사소통에나 가능하다. 더 깊고 고차원적인 개인 간의 소통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누락되기 십상이다.

누락된 정보는 곧 서로 간의 오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인간의 소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말뿐만 아니라 다양한 표정, 함축된 의미 파악, 농담과 반어법 같은 대화 기술은 또 어떨 것인가.

심지어 사람과 완벽한 대화가 가능한 AI가 개발된다 한들, 결국 인간은 '학습되거나 모방된 소통'이 아닌 인간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할 수밖에 없다.


언어의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침투력이다

50, 60대 이상의 프랑스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종종 "과거에는 영국의 왕도 프랑스어를 해야만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현재 영국인들의 언어인 영어가 전 세계 공용어가 된 것이 아직도 좀 거슬린다는 듯한 뉘앙스와 함께.

그 안에서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묘한 노스탤지어와 과거의 영광에 대한 애잔한 우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식민지였든, 주변 이웃 국가였든 과거 힘의 질서에 의해 타민족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 태도가 때론 거슬릴 때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든 다른 유럽 국가든, 영어를 쓰는 미국인들이 만든 넷플릭스, 유튜브, 우버,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온갖 아메리칸 플랫폼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미국산 전기차를 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가는 곳마다 맥도널드가 있으며, 가정마다 대표적인 미국 소스인 케첩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드러운 침투력

사실 언어가 가진 정말 무서운 힘은 사실 "부드러운 침투력"이다.

상대가 자신의 모국어를 구사해 주기만을 바라는 입장과 상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입장 사이, 여러모로 더 폭넓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 후자일 것이다.

현대 영어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도 바로 이 침투력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 문화'라는 것을 잘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다문화 국가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영어 자체에도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스칸디나비아 계열 언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등등 다양한 언어의 단어들이 섞여 있고, 이제는 옥스퍼드, 캠브리지 영어사전에 등록되는 한국어의 개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여러 문화권의 영향이 녹아들어 있다 보니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자신들의 문화적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언어인 영어에 대해 이질감이 덜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다문화성(multiculturism)은 오늘날 미국 문화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모든 걸 "à la française"로, 즉 '프랑스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외국어 구사 능력은 굉장히 강력한 자존감 부스터다

언어 공부는 학교에서 내신처럼 특정 시험 범위 내에서 시험 기간 동안 주어진 내용들만 공부하면 다 해결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언어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꾸준함이 반드시 필요하며, 언제든 자신이 배워뒀던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날이 분명 온다.

그렇게 일정 기간 꾸준한 노력을 통해 언어 실력을 쌓아온 자신의 모습은 다른 일에도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의 밑거름이 된다.

결국 작은 성취 하나하나가 모여 큰 성취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문화권이든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저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만으로 '섹시'하다는 인상을 준다.

'뇌섹녀', '뇌섹남'을 논할 때 괜히 n개국어 구사자가 언급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몸 좋은 사람을 볼 때 사람들이 감탄하는 건 시각적인 매력이라면, 외국어 구사 능력은 비시각적이지만 굉장히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그 사람의 언어 실력이 그가 보냈을 수많은 시간과 보이지 않는 노력의 산물임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에 대해 몰랐던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경험의 동물이다.

태어나서부터 우리가 겪는 경험 하나하나가 우리 안에 녹아들어 성격과 태도, 가치관, 사물과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시야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된다.

언어는 그 자체로 경험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게 되는 경험의 폭과 깊이를 크게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입장권이다. 즉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게 되는 경험들이 무수히 많은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환경들이 맞물리며 그 안에서만 겪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몰랐던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것들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 과정은 짜릿한 느낌마저 들만큼 굉장히 특별한 경험들도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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