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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맛있는 음식 천지인 보르도 가론강변 마켓 Le marché des Quais Chartr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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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보르도 가론강(Garonne) 근처를 산책하는 길에 우연히 한켠에 장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오전에 40분 정도 빠르게 걷고 나서, 장이 서 있는 것들을 쭉 훑어 보는데 니스(Nice)의 시장을 연상케 할 만큼 종류도 꽤 다양했고 사람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시장을 훑고 간 게 오전 11시~11시 30분이었는데, 집에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고 이것저것 하고 나서 1시 반쯤 나갔더니 2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시장은 그 문을 닫고 있었다.

그래서 오전에 봤을 때 구매를 결심했던 음식들을 서둘러 사고, 그나마 남은 시장을 후다닥 구경하고 아쉬움을 갖고 돌아왔지만, 나중에 다시 한번 일요일에 장 보러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 첫 번째 구매, 빠에야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가장 구경 재미가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이라 생각한다.

특히 맛있는 것들을 꼭 먹지 않아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하는 성향인데, 꼭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도 그냥 구경만 해도 방문한 지역 고유의 지역적 특색도 엿볼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흥미롭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도 오랜만에 인천 신포시장을 갔었는데, 시장 전체가 하나의 큰 맛집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유럽에도 다양한 종류의 마켓이 열리는데, 확실히 대서양과 멀지 않은 보르도 지역은 해산물을 판매하는 곳들이 꽤 많다.

이날도 오전에 처음 돌아다닐 때, 현장에서 실제 굴을 먹을 수 있는 곳들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보르도 지역은 아직 여름다운 무더위는 오지 않았지만(어제도 늦은 오후에 나갔을 때는 얇은 긴팔 니트를 입어야 했다), 그래도 7월인데 저렇게 야외에서 얼음 위에 껍질 안에 있는 생굴들을 그대로 놓고 판매하고 구매하는 프랑스인들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나는 한국인임을 실감했다(?).

생선과 새우, 어패류를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을 판매하는 길-다란 해산물 트럭을 판매대로 두고 판매하고 있다.

저 뒤에 트럭에 보면 Criée d'Arcachon이라고 쓰인 것을 볼 수 있는데, Arcachon(아르카숑)은 보르도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대표적인 대서양의 어업도시이다.

따라서 보르도 지역에서 판매/소비되는 해산물은 아르카숑을 비롯해 프랑스의 서쪽에 있는 대서양에서 잡힌 것들이 많다.

🐟 La Criée [크리에]
주로 해산물을 판매하는 장소나 해산물과 관련된 레스토랑 메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단어 Criée.

프랑스어에서 Criée는 동사 crier에서 파생된 명사로, 원래는 '외치다', '소리치다'라는 영어의 shouting에 해당한다.
실제 영어에서 '운다'는 뜻의 'to cry'와 비슷하게 생겨서 묘하게 겹치는 느낌이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조수 시장에서 해산물을 비롯한 경매장에서는 참가자들이 큰 소리로 값을 외치며 경매가 이루어졌다.
Criée는 그러한 장소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그날 포획한 어획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도/소매시장을 말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프랑스 음식으로는 저렇게 붉은색의 소스를 흔히 볼 수 없다. 파프리카 가루 같은 향신료를 듬뿍 넣고 만든 스페인식 레시피일 확률이 매우 높다.

해산물을 즐겨 먹는 사람들 중 대표적인 스페인 음식인 빠에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빠에야는 늘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이다.

처음에 지나가면서 봤을 때는 그래도 반 정도가 남아있을 정도로 많이 있었는데, 막상 구매하러 갔을 때는 얼마 남지 않은 식어있는 상태로 있었다.
시즈닝 하여 구운 듯한 연어 필레.
대구(cabillaud)살에 시즈닝을 더해 한 요리인 것 같은데,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냥 봐도 좀 건조해 보여서 식욕을 자극하지는 않지만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 또는 마늘을 좀 더하면 나을지도..?

빠에야를 사고 싶다고 했더니, 영어로 "지금은 따뜻하지 않고 식은 상태이에요!"라고 외치셨는데, 프랑스어로 상관없다고 했더니 그래도 괜찮겠냐며 몇 인분이냐고 물으셨다.

포장 용기에 담으시면서, 관광객인 줄 알아서 바로 영어로 했다며 사과하셨는데, 시장에는 워낙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다들 영어 구사 능력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계셨다.

 

1인분에 jullienne(줄리엔)이라고 하는 대서양 생선(영어로는 blue ling이라고 한다)도 하나 추가했다.

그렇게 해서 가격을 측정하니 19유로 (털썩..)가 나왔다. 이 날 구매 중 가장 비싼 가격이었던 빠에야에 대한 후기는 이 포스트 하단에서 이어진다.


시장 구경

이날 오전에 시장을 둘러봤을 때 훨씬 더 볼 것이 많고, 음식들도 가득가득 채워져 있는 상태였는데, 막상 지갑을 들고 다시 돌아갔을 때는 거의 대부분 가판대를 정리하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 상인분들이 많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곳곳에 남미 음식을 판매하는 곳들이 꽤 있었다. 이곳 말고도 마켓의 끝자락에 페루와 베네수엘라 음식을 전문으로 파는 푸드트럭도 보았다.
이곳도 처음에 지나갈 때는 훨씬 더 그 양이 많았는데, 뒤늦게 갔더니 이미 많이 판매되고 정리하신 상태라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Pâtés en croûte [빠떼 엉 크루트]는 비교적 단단한 페이스트리 안에 채운 파테를 말한다.

가장 프렌치스러운 음식 중 하나인데, 보통 슬라이스로 잘라 판매된다.

Poulet는 닭을 말하는데, 토마토와 바질, 레몬과 타라곤 허브, 초리조와 피키오 고추(누가봐도 스페인 스타일), 살구와 아몬드를 넣은 신선한 조합의 닭 파떼도 있었다.
왼쪽에 가방 안에 바게트를 넣어둔 분이 뭔가 귀여워서 슬쩍 찍어본 사진. 한국인으로 치면 밥 공기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고 봐야할까 ㅎㅎ

✔️ 프랑스에서 정육점은 "boucherie"라고 한다.
영어의 butcher가 프랑스어로는 boucher라고 하는데, 이와 연상시켜 기억하면 편할 것이다.

고기와 파떼, 수제소시지 등 다양한 종류의 육류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의 정육점.
마치 17세기 네덜란드, 벨기에의 정물화에서 볼 법한 탱글탱글 예쁘고 고운 색의 살구. 프랑스에서도 보통 국산 식품은 가격이 더 비싸다 (털썩).

처음 시장을 지나갈 때, 지갑을 들고 나와서 사기로 결정한 머릿속 구매 리스트에 추가된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pêche plate, 납작복숭아였다.

사실 아주 오래전 프랑스에 처음 와봤을 때부터 접해봤던 납작복숭아였는데, 나는 이 복숭아가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그렇게 핫한지 전혀 몰랐다가 몇 년 전 온라인에서 블로그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

프랑스 남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납작복숭아는 여름 시즌에 가장 맛있는 과일 중 하나로, 가격도 합리적이고 일단 매우 달다.

그런데! 두 번째 다시 돌아갔을 때 이곳에서 사기로 했던 납작복숭아가 이미 거의 다 팔리고 단 3개만 남아 있어서 사고 싶은 마음이 시들시들해져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살구를 사볼까 하다가 오전에 사기로 했던 건 분명 "복숭아"였기에, 복숭아를 살 수 있는 다른 곳을 찾아 나섰다.

✔️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더 맛있는 과일/야채로는 호박, 고구마, 오이, 무 등이 있는 반면, 유럽에서는 토마토, 복숭아, 멜론이 매우 맛있다.
(참고로 배는 아시아산과 유럽산이 거의 같은 과일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맛과 식감의 차이가 커서 뭐가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열심히 판매대를 정리하고 계신 상인분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프랑스도 대형마트에 슈퍼마켓에서는 외국산 과일과 야채가 매우 많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거의 대부분 다 프랑스 국내산 음식을 파는 게 더 많은데, 그래서 생각보다 시장이라고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구운 닭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다. 이 푸드트럭은 직접 요리한 야채 사이드메뉴도 같이 판매하고 있었는데, 내가 다시 돌아갔을 때는 다 팔리고 진열대가 거의 빈 상태였다.

이날 시장에는 poulet rôti, 즉 구운 닭을 판매하는 곳도 몇몇 보였다.

그 앞을 지나가는데, 한국에서 보는 통닭구이 트럭도 생각나면서 그 고소하고 담백한 향이 솔솔 풍겨 나와 참지 못하고 구운 닭도 하나 사기로 했다. 

오전에 왔을 때 봐두었던 이곳에서 구운 닭을 사기로 했다.

원래는 한 마리에 20유로인데, 반마리에 반값인 10유로로 판매된다고 하여 옳다쿠니(갑자기 왜 이렇게 옛날 사람 같지) 싶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구매했다.


시장에서 사 온 음식 후기

🍗 구운 닭

종이 포장지에 담겨 있는 기름 반질반질한 구운 닭. 향신료를 발라 구운 것 같아 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마구마구 올라왔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서 거부할 수 없는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포장 용기를 딱! 열었는데, '어라? 반마리가 아니고 한 마린데?' 하는 생각이 바로 머릿속을 스쳤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닭. 크기가 꽤 큰데도 속살까지 잘 구워졌다.

그렇다면... 반마리스러운 한 마리라고 해석할 수 있는 거라는 결론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한 마리를 샀으면 한 4일은 내내 이 닭을 먹었어야 했을지 모를 정도로 1/2 닭은 매우 컸다. 

사실 작은 칠면조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컸다.

닭다리 하나도 굉장히 컸다.
큰 사이즈에도 안쪽까지 살이 잘 익은 것을 볼 수 있다.

차근차근 포크와 나이프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살을 발라낸 뒤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웠다.

그렇게 잘 데워서 김이 모락모락 날 때 한 입 먹어본 구운 닭의 맛은 '그래, 이거지' 하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후후).

기름이 반들반들한 겉 표면뿐만 아니라, 결 그대로 쭉쭉 찢어지는 닭의 살도 수분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어 전혀 건조하지 않았다.

특히 구운 닭은 온도나 조리 시간을 잘못 맞추면 쉽게 건조해질 수 있는데,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익은 구운 닭임을 알 수 있었다.

할레페뇨 고추나 코울슬로 같은 사이드메뉴를 곁들였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지만 닭 그대로만 먹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한 끼.

닭다리 자체도 워낙 커서 한 개만 먹어도 충분해 보였다.

거기에 가슴살과 구석구석 발라낸 살을 더해 오랜만에 풍성한 단백질 위주의 한 끼 식사를 먹었다.


🥘 빠에야

구운 닭의 냄새도 코끝을 꾸준히 자극했지만, 샤프란을 넣은 샛노란색의 빠에야는 늘 먹기 전에 설레는 음식 중 하나이다.

해산물 킬러인데, 그 안에 생선과 홍합, 오징어, 새우 등 다양한 해산물에, 항상 먹을 때마다 큰 만족감을 선사하는 빠에야는 아는 맛이 무서운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빠에야를 포장할 때 위와 같은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준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던 나.

빠에야 위에 큼지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위풍당당한 자태의 줄리엔.

가끔 마트에서 사다 먹을 때가 있는데, 구이로 먹어도 나쁘지 않다.

개성이 강한 생선이라기보다, 조리방법에 따라 그 맛이 영향을 많이 받는 살이 두툼한 흰 살 생선이다.

왜 저 위에 갑자기 닭고기 살이 얹어져 있냐고 물으신다면...

식은 거야 어차피 다시 데우면 상관이 없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그릇에 담았다.

그렇게 한 입 맛을 본 빠에야.

음... 뭔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갔는데, 일단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빠에야 치고 다소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강렬했던 '시큼한 맛'이다.

혹시 쉰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원래 빠에야에 뿌리는 레몬즙을 너무 과다하게 뿌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맛이 많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맛의 보완을 위해(산도를 낮추기 위한) 구운 닭 살을 좀 발라 올려주었다.

실제로 빠에야에 닭다리를 넣는 경우도 있어서 그리 이질적인 조합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빠에야와는 다르게 꽤 큼지막한 조개도 들어있어서 먹어봤으나, 생각보다 비린 맛이 있어 그냥 입에 넣고 저작질을 좀 하다가 바로 뱉었다.

나머지 밥은 다 먹긴 했지만, 계속 신맛이 강한 밥에 어색함을 느끼며 끝으로 갈수록 꾸역꾸역 입에 넣어야 했던 것은, 그래도 이날 구매한 것 중 가장 비싼(19유로) 음식이었던 것도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줄리엔 흰살생선과 새우가 맛있었기 때문도 있다.

아무튼 다음에 마켓에 돌아가게 되면 빠에야는 과감하게 패스해야 할 것이란 걸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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