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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마음에 쏙 드는 세련된 프렌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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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특별한 자리를 위해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할 레스토랑을 찾았다.

보르도 시내에서 평소 자주 다니는 곳이 아닌 전혀 색다른 구역에 있는 레스토랑 한 곳을 찾았는데, 어느 한 호텔 소속의 레스토랑으로, 리뷰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가볼 만한 곳이라는 느낌이 딱 왔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던 Madame B라는 보르도의 한 레스토랑에 대해 소개한다.


내부 분위기

Mid century 스타일을 컨템포러리한 감성으로 꾸민 듯한 분위기이다.

전체적으로 둥근 라인들로 부드러운 느낌의 컬러 톤과 은은하면서도 따뜻함을 더하는 조명, 포근한 벨벳 소재 등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기분 좋게 식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 단어로 묘사하거나 명칭할 수 없는" 컬러들을 좋아하는데, 이곳에는 그런 컬러들이 가득해서 뭔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또한 나무 소재로 벽과 바닥을 마감했는데 곳곳에 사용된 적당한 골드 컬러가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중앙에 바가 있고, 양쪽으로 테이블과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바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데코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많이 나는 호텔 내부로 이어지는데, 이곳의 내부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해볼까 한다.
우리가 앉아있던 4인 테이블 옆에 있던 창가의 2인 테이블. 혼자 와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면 이 자리에 앉아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 감성의 무드 램프와 세라믹, 오브제 등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바깥에는 테라스 자리가 있다.

온라인으로 테이블을 예약할 때, 참고사항에 "창가에 있는 테이블"로 부탁했었는데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 좌측에 있는 창가 자리는 최대 4인석 테이블과 2인석 테이블 단 두 개만 있었는데, 나머지 테이블들에 비해 식사 내내 더 조용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참 좋았다.

매우 프렌치스러운 분위기의 데코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의자들도 조화로운 부드러운 색감으로 통일하고, 나무 소재가 주는 따뜻한 느낌을 더해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지나가야 하는 구간인데, 레스토랑에서 나와 호텔 안쪽으로 이어지는 넓고 복잡한 공간이 펼쳐진다.
취향 저격 그대로 당해버린 인테리어 디자인 스타일.
내부에는 바와 같은 공간이 중앙에 있었고, 서빙해주시는 분 말로는 다음 주부터 처음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시네마 이벤트를 열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타란티노 감독의 Pulp fiction 등 오래된 영화들이 실내 상영될 예정이며, 35유로에 치즈와 charcuterie 플래터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이 제공된다고 했다.


메뉴

매주 수요일마다 바뀌는 메뉴. Les petits plats는 영어로 "small dishes"라는 뜻인데, 이 이름에서도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걸 짐작해볼 수 있다.

메뉴도 레스토랑의 전체 인테리어 디자인 감성과 통일한 듯하다.

둥근 아치형의 종이로 된 메뉴 안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바뀌는 그 주의 메뉴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들어있다.

스타터, 메인디쉬, 디저트 메뉴 사이에서 가격 차이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메뉴 구성을 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결정장애를 자주 겪는 이들에겐 고난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서빙해주시는 분이 메뉴를 건네주기 전에 "혹시 우리 레스토랑에 대해 어느 정도 아시나요? 아니면 처음 방문하신 건가요?"라고 물었다.

레스토랑을 예약하기 전 레스토랑 사이트에서 미리 메뉴 관련 정보를 확인하고 갔지만, 첫 방문이라며 설명을 부탁했다.

일단 왼쪽이 스타터로 볼 수 있는 메뉴이고, 오른쪽은 메인으로 볼 수 있는데, 메뉴판 자체에는 그렇게 설명되어 있진 않다.
보통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는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같은 코스 메뉴에도 가격 차이가 조금씩 날 수 있는데, 이곳은 단지 전체 메뉴에서 최소 2개, 최대 5개 디쉬까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자기만의 메뉴를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타터 메뉴나 메인디쉬에서만, 또는 디저트 메뉴에서만 고를 수도 있고 하는 식이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가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평소 집에서 해먹기 힘든 음식들을 먹어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함이라 생각하는데, 그만큼 양보다는 소량씩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걸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소량으로 파인 다이닝 식사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인 시스템이다.

일단 2개로 시작해서, 식사 도중에 3개, 4개 등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추가 주문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

Entrée

🍓 Légumes comme une tarte (Vetetables like a tart)

샬롯 콩피(confit d'échalote), 갈릭 크림 ㅡ 베지테리언 메뉴

받자마자 컬러와 재료 구성, 플레이팅 모두 취저 당해버린 첫 번째 디쉬.

나는 왼쪽 스타터 메뉴 중, Légumes comme une tarte를 골랐다.

"타르트 같은 야채"를 뜻하기에, 주문하기 전 타르틀렛(tartelette) 형태 위에 여러 종류의 야채들이 올려져 있을 것 같았다.

할레페뇨 소스, 멜론을 곁들인 참치 요리인 Thonine과 고민하다가, 같이 간 일행 두 명 모두 Thonine을 선택하여 나는 다른 메뉴를 고르기로 했다.

야채를 얹고 있는 아래의 타르트지는 적당히 짭조름하게 간이 되어 있었고, 바삭한 식감에 기분 좋은 파프리카향이 났다.

타르트지도 직접 만든 것이 분명했고, 그 위에 올려진 각 재료의 개성을 살려주면서도 하나로 통일해 주면서 전체 요리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확실히 했다.

디쉬를 받자마자, 색도 너무 예쁘고 알록달록 마음에 쏙 들었던 깔끔한 플레이팅. 주변에 어줍잖게 공간 채우기용으로 뿌려진듯한 발사믹 드리즐링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브로콜리, 호박(courgette), 오이 피클, 파프리카, 브로콜리등의 저마다 고유의 매력과 식감을 지닌 채소들을 부드러운 갈릭 크림 위에 한데 모아 마치 접시 위 작고 예쁜 섬처럼 만든 디쉬. 

평소 과일을 요리에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럴 때 중요한 게 과일이 지닌 '단맛'이 세서 디저트스러운 요리로 만들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특히 딸기는 한국에서 후식, 간식으로 먹는 간식이랑 뿐, 식사를 할 때는 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재료로 여겨질 텐데, 유럽의 파인 다이닝에서는 딸기 리조또도 있을 만큼 "어, 이게 되네?" 싶게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재료이기도 하다.

물론 당도가 너무 세지 않은 정도 안에서 딸기 자체가 지닌 비타민C 낭낭한 가벼운 산도를 잘 활용해야 하는 게 관점이다.

오히려 화이트 플레이트를 썼으면 디쉬의 형형색색 알록달록 예쁜 컬러들이 더 돋보였을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선택이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던 만족스러운 스타터.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시간보다 사진을 찍고 후다닥 먹어버렸더니 어느새 빈 접시만 남게 되었다.


🐟 Thonine

참치, 멜론, 할레페뇨 jalapeños 소스

딱 여름에 가볍게 먹기 좋은 디쉬처럼 보였던 Thonine. 칸탈루프 멜론과 jalapeños 소스라는 두 재료만 봐도 여름이 연상된다.

같이 간 일행들이 주문했던 Thonine.

메뉴에는 멜론과 할레피뇨 소스만 적혀있었지만, 프랑스어로 참치가 thon [똥]이라고 하는 걸 알면 이 디쉬의 이름에서 참치가 들어갔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 메뉴로는 Tunnie라고 적혀 있었는데, tuna에 나름 귀엽고 캐주얼한 느낌을 더하려는 시도 같아 보였다. 

Linseed, flaxseed라고 불리는 아마씨로 만든 트윌은 부드러운 나머지 재료들로 느슨해진 식감에 바삭함이라는 긴장감을 더하기 위한 요소였으리라. 멜론도 토치로 겉을 그을려 가볍게 불향을 더한듯 했다.

쉐어하는 분위기가 아닌 곳이기도 하고 디쉬마다 양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 각자 자기가 주문한 요리만 먹어서 위 요리는 사진만 찍고 나는 맛을 보지 않았지만 일행의 반응은 만족스러움 그 자체였다.

멜론이 가진 사각사각하면서도 단맛이 담긴 촉촉함, 매콤함과 산도로 부드럽게 톡 쏘는 할레페뇨 소스, 다카키처럼 겉만 살짝 익힌 참치에 아마씨 트윌로 마무리한 디쉬. 색감도, 재료 구성도 신선하다.

묵직하고 많이 먹으면 다소 거북할 수 있는 참치를 가볍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프렌치 퀴진을 경험할 때 특히 관심 있게 보는 요소 중 하나가 플레이팅인데, 기본에 충실하면서 조잡하지 않은 구성에 색감과 식감이 조화를 이루는 디쉬라면 무한 애정이 간다.


Pain [빵]

함께 서빙되는 버터에 발라먹기만 해도 순식간에 손에서 사라져 버리는 고소하고 담백한 빵. 프랑스에서는 보기 드문 옥수수를 넣은 빵이라 따로 판매하면 사가고 싶을 정도였다.

💬 개인적으로 속살이 흰빵을 안 먹은 지 꽤 오래되었다.
안이 하얗기만 한 바게트와 같은 빵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일반적인 프렌치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식전빵이나 식사에 곁들여 먹는 흰 빵에는 손을 대지 않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직접 구워낸 빵을 서빙하는 경우가 흔한데, Madame B에서도 부드러운 라떼 색의 빵과 프랑스에서는 보기 힘든 강황 같은 노란빛의 빵이 버터와 함께 나왔다.
색을 보고 옥수수를 넣고 만든 빵일 거라 짐작하고 맛을 봤는데, 고소한 게 역시 옥수수빵이 맞는 듯했다.
나중에 식사를 마치고 웨이터 분한테도 확인차 물어봤더니, 옥수수빵이 맞다고 하셨다.

Plat principal

 🐤 Canette

오리 필레, 폴렌타, 블랙커런트, 당근

디쉬가 나오고 서빙해주신 분이 그레이비 소스(jus)를 따로 적당량 부어주셨다. 전체적으로 양이 많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메인 디쉬로 먹기엔 충분했다. 실제 디저트를 먹지 않고 스타터 디쉬 1개, 메인 디쉬 2개를 시킨 친구는 두 번째 디쉬를 남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프랑스어로 canette [까네뜨]는 암컷 오리를 말한다.

프랑스 남서부는 특히 가금류(volaille) 고기가 지역특산품처럼 유명한데, 그런 만큼 남서부 지역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면 오리 요리, 푸아그라 등 가금류 고기를 사용한 요리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요리를 먹으면서 나와 같은 Canette 디쉬를 고른 일행에게 "조리(cuisson)가 정말 완벽하게 됐다"는 말이 절로 여러 번 나왔다.

조리 정도는 요리의 기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완벽하게 재료를 익히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플해보이지만, 재료 하나하나 조리도 완벽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맛도 풍부하면서도 어느 하나 튀는 것 없이 모두 조화롭게 잘 어울렸다.
옥수수빵과 함께 곁들여 남아 있는 소스와 폴렌타에 찍어 먹거나, 함께 서빙된 버터를 발라 먹기만 해도 입안에서 맛있다고 아우성이다.

옥수수로 만든 탄수화물 폴렌타(polenta)는 원래 건조하고 퍽퍽한 느낌이 있는데, 이 디쉬에서는 거의 계란을 섞은 크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부드럽고 촉촉했다. 거기에 속까지 완전하게 익힌 옐로우 캐롯과 퍼플 캐롯(유전적으로 변형되기 전 당근은 원래 짙은 보라색이었다고 한다)은 수비드로 조리한 뒤 팬에 구운 것 같기도 했는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특히 가운데 있는 수비드로 조리한 듯한 마늘이 정말 단 한 개만 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너무 맛있었다.

블랙커런트(프랑스어로는 cassis라고 한다)처럼 짙은 베리류는 오리처럼 가금류 적육에 특히 잘 어울리는데, 블랙커런트나 라즈베리 등 산도가 적당히 있는 베리를 그레이비에 섞어 만든 소스와도 궁합이 좋다.

(뇌피셜일 뿐이지만, 포도로 만든 와인도 그래서 적육과 잘 어울리지 않나 싶기도 하다)

 

겉과 속을 완벽하게 조리한 오리 고기에 건조하지 않고 촉촉한 폴렌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단맛을 그대로 살린 당근과 톡 쏘는 공격적인 맛은 사라지고 담백하고 짙은 향기와 부드러운 식감을 남기는 마늘, 거기에 밋밋하지 않게 작지만 큰 존재감을 주는 블랙커런트.

물론 메뉴 조합 자체는 클래식하지만, 완벽하게 조리된 요리로 큰 만족감을 주었던 디쉬였다.


🐟 La Criée (Catch of the Day)

허브를 곁들인 밀레(Millets aux herbes), 랍스터 버터 자바이오네(Sabayon beurre de homard)

"La Criée"라는 이름을 보고 프랑스인 일행들과 모두 "이건 뭐지?" 싶었는데, 그 옆에 영어로 "Catch of the Day(그날 잡은 생선/해산물)"라고 되어있는 걸 보고 생선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메뉴에 적혀 있는 디쉬 설명으로는 Millet aux herbes, 즉 "허브를 곁들인 밀레"가 있었는데, 같이 간 프랑스인 일행들도 "millet"가 뭔지 모르길래 서빙해 주시는 분에게 물어봤더니 밀과 비슷한 곡물이라고 알려주셨다.

그 뒤로 인터넷에 찾아보니 한국어로는 '서곡'으로 번역되는 수수, 조 등의 알갱이가 작은 잡곡을 지칭하는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디저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디저트 대신 메인디쉬 두 종류를 골랐던 친구의 두 번째 메인디쉬 요리.

그런데 배가 부르다며 다 먹지 못하고 조금 남겨서 살짝 맛을 봤다.

 

계란, 설탕, 와인 등을 넣고 만드는 이탈리아의 디저트 자바이오네(Zabaione)를 프랑스어로는 Sabayon [사바용]이라고 하는데, 디저트를 메인디쉬 요소로 넣는 요리사의 개방적인 마인드가 반영된 디쉬이지 않나 싶다.

랍스터 껍질을 우려낸 육수를 넣고 만든 버터에 달걀노른자와 화이트와인 등을 넣었지 않았나 싶었는데, 마치 올랑데즈소스처럼 녹진하면서도 짙은 맛이 매력적인 소스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다만 보기보다 맛이 묵직하고 강한 편인데다가 다른 디쉬에 비해 간이 조금 센 것이 다소 아쉬웠지만, 역시 전반적으로 훌륭한 디쉬였다. 

후식으로 더 잘 알려진 재료인 과일을 식사용 디쉬에 사용한다든지, 펜넬과 같은 야채를 디저트에 사용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전체적으로 식사와 후식 사이, 그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 개방성이 좋았다.

어떤 생선인지 (이미 배부르고 귀찮아서) 묻지 않았지만, "오늘의 생선"식으로 그날 구비된 생선으로 만든 디쉬 같았는데, 밑에는 짙은 그레이비를 넣은 소스 같았고, 그 위에 랍스터 버터 자바이오네 소스를 풍부하게 얹은 뒤, 알새우칩 맛과 비슷한 매우 얇고 바삭바삭하게 튀긴 트윌을 얹어 짭조름하면서도 바삭한 식감을 더했다.

역시 음식에 정성을 기울이는 레스토랑은 음식 전체의 맛뿐만 아니라, 식감의 균형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Desserts (Plats Sucrées)

만족스러운 식사의 마무리가 기대되는 디저트 메뉴.

🍓 Fraises

펜넬 소르베, 타임(thyme) 허브를 넣은 쇼트브레드(Sablés), 비니거에 절인 펜넬, 가벼운 바닐라 크림, 딸기잼

메뉴에서 너무 클래식한 구성 같아 보여서 망설였지만, 앞선 스타터와 메인 디쉬를 워낙 완벽하게 조리하신 걸 봤기 때문에 클래식한 재료의 구성도 어떻게 잘 만드실지 궁금해졌다.

사실 내가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고를 때 고려하는 기준 중 하나가 "계절성(seasonability)"이다.

제철음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너무 무겁고 식사 후 더부룩할 것 같은 요리는 먹고 싶지 않고, 겨울에는 너무 가벼운 요리보다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포만감도 주면서 담백한 단백질이 돋보이는 음식을 즐긴다.

디저트는 레몬 크림, 로즈마리, 올리브를 곁들인 살구와 둘 중 고민하다가(딸기와 살구, 복숭아 등 모두 너무 좋아하는 과일들이다), 결국 클래식한 딸기 디저트를 선택했다.

살구, 레몬, 로즈마리, 올리브의 조합은 각 재료의 이름만 들어도 지중해가 떠오르는 전형적인 지중해 요리(Mediterranean cuisine) 그 자체이다.

특히 살구 디저트의 경우, "레몬 크림, 로즈마리, 올리브"에서 올리브가 어떻게 들어가서 어떤 역할을 할지 너무너무 궁금했지만, 결국 딸기를 고른 것은 양파(쿵야)와 비슷하게 생긴 "펜넬(fenouil)"이 어떤 역할을 할지 또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여름 디저트로 딸기와 바닐라 조합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이다. 야채 펜넬까지 더해져 평범함에서 특별함으로 거듭난 디저트.

신선한 딸기에 딸기와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바닐라크림(🫶), 펜넬 소르베, 허브 타임(thyme)을 넣고 만든 쇼트브레드(Sablés), 직접 만든 딸기잼에 비니거에 절인 펜넬을 더해 개성 있는 상큼함을 더했다.

특히 바닐라크림이 너무 맛있었는데, 재료 하나하나를 조금씩 스푼에 담아 입 안에 넣으면, 각 재료가 맛, 식감에 있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만족스러운 디저트였다. 

이러한 스타일의 디저트는 주로 타르트, 빵, 케이크류 등을 판매하는 디저트 전문 판매점에서 구매하기 어렵기 때문에, 괜찮은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면 디저트는 꼭 한 번 시도해 볼 것을 추천한다.


🍫 Chocolat

초콜릿 트윌, Streusel 코코아, 초콜릿 아이스크림, 초콜릿 이멀전

초콜릿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만큼, 웬만하면 맛있기도 하지만, 파인다이닝에서는 잘못하면 진부해질 수 있는 디저트 재료이기도 하다.

특히 나는 다크초콜릿은 좋아하지만, 애매한 비중의 초콜릿보다 단맛이 더 강한 밀크초콜릿은 그리 즐기지 않아, 생각보다 주문하기 전에 좀 망설여질 때가 있다.

특히 봄, 여름처럼 따뜻한 계절보다, 따뜻하고 좀 더 묵직한 음식에 눈길이 가는 가을, 겨울 시즌에 더 마음이 가는 게 바로 초콜릿 디저트이다.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스푼을 들고 처음 한 입을 먹기 전 모습을 포착했다.

같이 간 일행 중 한 명이 엄청난 초콜릿애호가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망설임 없이 초콜릿 디저트를 골랐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지만, 두툼한 초콜릿 트윌 위 어딘가에 파릇파릇하고 신선한 민트 잎을 살짝 얹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얇은 초콜릿 트윌 아래 좀 더 밝은 컬러의 초콜릿 무스가 있는데, 나도 한 입 맛봤지만 초콜릿 애호가들에겐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디저트일 것 같다. 초콜릿 재료 하나로 다양한 식감의 조합을 낼 수 있는 걸 보면 초콜릿은 참 대단한(?) 식재료가 아닐 수 없다.

송송 뚫린 구멍에서 짐작해볼 수 있는 초콜릿무스의 부드러움.

초콜릿 디저트보다 내가 주문했던 디저트가 내 입맛엔 더 맞았지만, 단지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일 뿐, 분명 두 디저트 모두 매우 잘 만들어진 디저트라 할 수 있다.


마무리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듯, 주문을 하고 나서 기다리는 시간이 좀 있는데, 그만큼 디쉬 하나하나 대충 만들지 않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스타터, 메인 디쉬 요리는 좀 더 시간이 걸렸지만, 조리가 많이 필요 없이 대부분 미리 준비된 재료를 조합해서 만드는 디저트는 상대적으로 그 기다림의 시간이 짧았다.

 

우수한 음식의 질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만족스러웠으며, 실내 분위기도 좋고, 합리적인 가격대로 한 번씩 특별한 날 가볼 만한 레스토랑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식사하던 테이블 근처에 혼자 와서 여러 음식을 주문하고 각 메뉴를 음미하는 일본인 남자 관광객이 있었는데, 식사 중 그의 표정을 봤을 때 매번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공감합니다).

 

 

보르도를 여행하는 이들에게도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여행자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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