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씨에서 초여름의 기운이 느껴지는 6월 중순, 보르도 시내에서 좋아하는 거리 중 한 곳인 Rue Saint-Rémi [생레미] 거리에 위치한 Café Brazza라는 카페에 갔다.
이 날은 날을 잡고 보르도 시내 여기저기를 구경 다녔는데,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 몇 곳들을 가보았다.
대부분 사람이 너무 많거나,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공간이 좁고 조명도 어두워 다음번에 가볼 것을 기약하며, 구글로 다른 카페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렇게 몇 곳을 돌다가 '오늘은 여기다'라는 마음으로 들어가게 된 카페 브라자(크흠)는 생각보다 기분 좋은 경험을 해 오랜만에 팁으로 2유로까지 내게 된('아, 불경기인데.. 에잇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 곳이다.
카페 내부 분위기
보르도에는 패셔너블한 카페들이 참 많은데, 이곳의 장점은 그리 넓지 않지만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이다.
테이블, 천장에 달린 조명 쉐이드, 그리고 심지어 천장에 달린 팬까지 우드 소재로 통일할 정도로 나무가 주는 포근한 느낌을 기반으로 곳곳에 초록색을 가미해 아늑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카페에 들어서면 원색의 벽화를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실제 보르도 시내에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그 장소에 어울릴 만한 예술적인 분위기의 벽화를 의뢰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콜라보레이션을 좋아하는 MZ세대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잘 활용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보르도 시내에 대해 좋아하는 점 중 하나가,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색들이 있다는 것이다.
전공 영향도 있겠지만, 아주 어린 나이부터 색에 특히 민감했던 아이였던 나는 무채색이 많은 곳에 오랫동안 있으면 물 밖에 내놓은 물고기처럼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대충 사진을 찍어도 알아서 포토제닉하게 예쁜 사진이 뚝딱 나오게 되는 것도 바로 이처럼 다양한 색으로 가득 찬 보르도의 아름다움 덕분이다.
압도적인 친절함 🙌
보르도 사람들은 유독 느긋하고 친절하다 (이 점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도 살아본 경험으로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도 대부분 매우 친절하게 응대해준다.
CAFÉ BRAZZA의 이 여자 사장님도 매우 친절하신 분이었는데, 문장마다 자동적으로 "Génial [제니알] (완전 좋다)"이라고 수퍼 긍정 반응을 해주셔서, 마치 "Awesome!"을 연발하는 미국인들이 연상되는 듯할 정도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아직) 아무도 사람이 없었어서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보르도 지역에 사는지, 어떻게 보르도 지역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 살게 된 지 오래됐는지, 이 카페는 그냥 우연히 들어온 건지 알아보고 온건지 등 자연스레 서로 마치 핑퐁 하듯 질문을 주고받았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머! 한국인이었군요!" 하면서 인스타그램 보면 한국 카페들 너무 잘 한다고, 자기도 한국 카페들 보면서 잘 하고 싶은데 그렇게까지 못하는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하셨다.
대화 초반에 카페 운영하는 게 신경 쓸 일도 많고 쉽지 않을 거 같다고 그랬더니, 단골들도 많고 보르도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친절해서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든다고 밝은 얼굴로 말씀하시는데, 왜 사람들이 긍정적인 사람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음료
혹시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올리려 하는데 이곳 사진들 좀 찍어도 될까요?
이 말 한마디가 이후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주문한 카라멜 프라푸치노(Frappé caramel)에 샹틸리 크림을 올려주냐는 질문에 안 올려주셔도 된다고 말했었다.
평소 내가 카페에서 주문하는 음료들은 주로 밀크티, 차이라떼, 마차라떼, 골든라떼, 그리고 평소에 보유하고 있지 않은 향과 맛들이 조합된 차인데, 이날은 그냥 기분에 내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주문한 음료를 준비해 주시는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동시에 카페 내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혹시 인플루언서이신가요?"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손사래를 치며 인플루언서는 아니고, 보르도 지역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몇 분 뒤 테이블로 음료를 갖다 주셨는데, 얼음은 없지만 손의 온기로 음료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게 하는 디자인의 컵을 사용하신 듯했다.
내가 음료 사진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사진을 찍으려면 크림을 올리는 게 더 낫지 않냐고, 크림값은 따로 받지 않고 그냥 올려드려도 상관없다면서 내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상관없다고 했고, 그렇게 해서 아래 사진과 같이 새롭게 준비된 "두 번째"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받게 되었다.
카라멜시럽이 풍성하게 올라가니 확실히 더 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커피도 샷추가를 하셨다면서, 혹시 맛이 너무 강하지 않냐고 물으셨고, 내가 너무 맛있다고 감사히 마시겠다고 했더니 밝은 얼굴로 안심하는 내색이셨다.
음료를 마시면서 혼자 안쪽 자리에 앉아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늦게 와서 음료와 디저트를 먹고 계산하는 손님들에게 "음료 당도는 괜찮았나요? 혹시 너무 달지는 않았나요? 제가 단걸 워낙 좋아해서 혹시라도 너무 달게 만들었을까 봐요..!"라고 말하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주문했던 카라멜프라푸치노는 다행히 아주 은은한 단맛만 나서 오히려 딱 좋다 생각했었는데, 음료마다 당도를 다르게 만드시나보다 싶었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이 특징인 카라멜 푸라푸치노.
가격은 6유로였는데, 거스름돈으로 받은 4유로에서 2유로를 팁으로 드렸더니 (당연히) 굉장히 고마워하셨다.
"당신의 친절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요"하면서 팁을 놓는 작은 그릇에 동전을 넣었더니, "어머, 손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면서 밝게 웃는 얼굴로 고맙다고 여러 번 말하셨다.
카페에 머무는 동안 다른 손님들에게도 한 명 한 명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주려 노력하시는 모습에 카페는 서비스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카페, CAFÉ BRAZZA
두 거리가 마주 보는 곳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한 CAFÉ BRAZZA는 보르도의 상징적인 부르스 광장, "물의 거울"에서도 가깝다.
위 사진은 폴딩도어가 열린 상태이고, 실제 입구문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지만 우측에 있다.
음료가 유별나게 맛있는 곳이라고 하진 않을 것 같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친절함의 가치가 갖는 차별성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사장님이 의식적으로 더 많은 단골들을 확보하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세심하게 사람을 챙기는 마음은 결국 사람에게 와닿기 마련이다.
아무리 맛집이라도 불친절하거나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꼭 그곳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카페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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