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던 파리 한식당에서 프랑스인 친구가 주문했었던 게장 생각이 떠올라, 예전에 써놨다가 한동안 묵혀놓았던 포스트가 떠올랐다.
거기에 얼마 전 어떤 분께서 프랑스인들도 날 음식을 먹냐고 물어보셔서 또 '이런 우연의 일치가?' 싶어, 이번 포스트를 통해 유럽 사람들도 샐러드 외에 익히지 않은 날음식을 제법 잘 먹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진정한 K밥도둑, 게장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날 게를 장에 담가 먹는 자랑스러운 한국만의 레시피
유럽에는 간장게장 전문 식당이 없다
평소 한국에 갈 때마다 꼭 한 번 이상은 먹는 메뉴가 게장이다.
간장게장이든 양념게장이든 상관없다.
짭조름하면서도 미묘한 달짝지근함이 배어 있는 부드러운 살을 먹다 보면 어느새 쌀밥 한 그릇이 뚝딱 사라진다.
괜히 밥 스틸러, '밥도둑'이라는 별칭이 붙은 게 아닐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에 가서 한식을 먹을 때마다 메뉴마다 프랑스인들의 입맛에 맞을지, 프랑스에서 대중화될 수 있는 맛인지 혼자 속으로 분석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중에서 프랑스인들도 얼마든지 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든 게 바로 게장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해산물 수요가 낮지 않은 나라이며, 아시아 음식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있기도 해서 밥과 곁들이는 아시아 요리에 익숙한 사람들도 꽤 많다. 간장게장의 경우 간장 양념의 꼬릿꼬릿한 특유의 냄새도, 이미 독특한 냄새를 지닌 음식들에 익숙한 프랑스인들은 큰 거부감을 가질 것 같지 않다.
식사 후 소화도 잘 되고 몸에 이로운 영양소도 풍부한 게장을 먹을 수 있는 게장 전문식당이 유럽에 있었다면 있었다면 개인적으로 꼭 한 번씩 주기적으로 찾았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의 입맛에도 맞을 것 같은 한국의 게장 (100% 뇌피셜)
한국에서처럼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간장게장, 매운 음식을 즐기는 이들을 위해서는 2~3단계 정도로 맵기 조절이 가능한 양념게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음식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을 것 같다.
밥은 흰쌀밥을 기본으로 하는데 식당에서 살을 다 발라 먹고 게 껍데기에 남은 양념에 흰밥을 넣고 알차게 비벼 먹는 한국인만의 팁도 알려주면 현지인들은 재미있어할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식사를 마치면 별미의 사이드 메뉴 개념으로 참기름과 이런저런 간단한 재료를 넣은 볶음밥이나 게살을 소량 넣은 주먹밥을 메뉴에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게장을 주문한 유럽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게껍질 안에 밥을 넣고 비벼 먹는 것을 알려주면, 신기해하면서도 맛도 있어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 같다.
게장 전문 식당, 성공적으로 유럽 현지화 하려면?
단지 먹는 방법이 다소 번거로울 수 있어 아예 살만 빼내든지, 게살을 쉽게 발라 먹을 수 있도록 유럽인들의 정서와 취향에 맞는 작고 '스타일리시한' 도구가 별도로 필요할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서처럼 일회용 비닐장갑에 앞치마를 끼고 먹을 일은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유럽의 한식당에서는 한국과는 다르게 물티슈가 제공되지 않는 곳도 많은데, 게장 식당을 운영하게 되면 위생 상의 이유를 생각해서라도 물티슈 제공은 필수여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엄격한 위생 관리와 현지 문화에 맞춰 고안된 식사 방법 등이 동반된다는 전제 하에 맛있는 레시피가 있다면 의외로 정말 많은 손님들이 모일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는 요식업계에서 종사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전혀 없으며 투자할 입장도 못되기 때문에 입만 나불거리기 쉽기도 하다(?).
육회
프렌치 요리는 한국인에게 꽤나 거리감이 있는 듯하지만 사실 프랑스에 살다 보면 생각보다 한국음식과 비슷한 요리들이 꽤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육회이다.
복분자를 곁들이면 레드 와인과 페어링 한 프렌치 음식의 뵈프 타르타르(bœuf tartare)의 한국 버전일 것 같다.
(외국 한식당 메뉴에서 육회는 "Korean Beef Tartare"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랑스 요리에서는 소고기 뿐만 아니라 연어 타르타르(tartare de saumon), 참치 타르타르(tartare de thon) 등 날생선을 사용해서 만들기도 한다.
파리에 갈 때 일행이 있을 경우 종종 한 번씩 들르는 Bouillons이라는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오래전 점심을 먹은 적 있는데, 그때 먹었던 타르타르에서 뜻박의 한국의 맛이라 살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보통 프랑스(특히 남프랑스)에서는 연어를 비롯한 생선 요리에 자주 쓰이는 케이퍼를 올린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날은 케이퍼의 시큼함 대신 참기름과 깨의 고소함을 맛볼 수 있어 내심 반가웠다.
한국의 육회와 프랑스 요리인 뵈프 타르타르는 소고기를 써는 방식으로 인해 식감의 차이가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언젠가 유럽에서도 냉동이 아닌 신선한 게장을 영접할 수 있게 되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게장 전문 한식당을 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아시는 분이 있으면 댓글로 꼭 알려주시길).
아마 기후 조건이 다르다 보니 채집할 수 있는 게의 종류가 달라 맛이 전혀 다를 수 있고, 재료 조달의 어려움 등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그럼에도 언젠가 유럽에서 게장집을 마주하게 된다면 무조건 프랑스인 지인들을 데리고 진정한 한식의 고급스러운 해산물 요리 맛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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