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큰 환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가, 막상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크게 실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디저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정이다.
프랑스의 웬만한 주요 도시들에는 베이커리, 디저트 카페 등이 수두룩한데, 보르도는 특히 그리 큰 도시가 아님에도 곳곳에 디저트 맛집들이 포진되어 있다(감사합니다🫶).
그럼에도 그중에서도 특히 더 맛있고 특별한 곳을 찾기 위해 주기적으로 리서치를 해놓고, 나만의 작은 보석함 같은 to-go 리스트에 저장해 두는데, Goûtu par Oven Heaven라는 이 디저트 카페도 그중 한 곳이었다.
이름과 주소를 저장만해두었다가 이번에 처음 찾아가 봤는데, 알고 보니 평소 다니던 치과 근처였는데, 여기를 자주 들락날락하다가는 치과도 자주 들락날락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애초에 미리 밝혀두지만, 앞으로도 여러 번 포스팅하게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드는 디저트 카페에 대해 소개한다.
Goûtu par Oven Heaven
이날 다른 볼일들을 보고 나서 문 닫기 30분 전쯤 도착했더니, 이미 대부분 그날의 디저트들이 다 팔리고 남은 건 이게 다였다.
원래는 카페 안에 앉아서 음료와 디저트를 같이 주문해서 여유 있게 음미해보려 했으나 시간 상 그럴 수 없어, 급하게 후다닥 사진을 몇 개 찍고 디저트 포장 주문을 해가기로 했다.
여자직원분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다른 날 오전에 새롭게 만들어진 미니 케이크와 온갖 페이스트리들로 가득 찬 진열대를 촬영한 영상들을 보여주셨는데, 정말 나도 모르게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몇 분간 결정장애에 시달리다가, 이날도 평소에 잘 고르지 않는 선택을 하였다.
평소에 레몬타르트 같은 레몬맛 디저트를 되도록 피하는 편인데, 이날은 레몬타르트를 고른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디저트 선택 메커니즘
'머랭'이 없는 레몬타르트? 오히려 좋은데?
전통적인 레몬타르트는 계란 흰자에 설탕을 왕창 넣고 만든 머랭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나는 파블로바 같은 단맛이 많이 나는 머랭 디저트를 안 좋아한다.
(마카롱도 좋아하지 않는다)
각 디저트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시는 여자분과 대화 중에, 레몬타르트에 대해 혹시 그 당도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마치 기다렸단듯, 절대 너무 달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시면서, "저희는 단맛이 너무 많이 나는 머랭을 넣은 디저트는 잘 만들지 않아요"라고 하는 말에서 일단 70% 설득이 되었다.
보통 레몬, 라임, 루밥과 같은 재료들은 기본적으로 신맛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신맛을 줄이기 위해 설탕 등 당분을 특히 더 많이 넣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머랭이라는 강한 단맛을 지닌 요소가 일종의 솔루션으로 더해진 것이지 않을까 가정해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높은 산도의 강한 신맛과 인공적으로 단 머랭의 조화를 다소 부조화스럽게 생각하는 편인데, 그렇게 억지스러운 단맛 대신 부드러운 크림을 올렸다는 점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 🌿 레몬 + "바질" = 즉각적 호기심 자극
일단 나는 디저트와 식사에 사용되는 재료들 사이에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매우 좋아한다.
예를 들어 과일을 요리에 쓰는 것이나, 당근, 아보카도, 비트루트, 감자, 고추 등과 같은 요리 재료를 디저트에 쓰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보면 호기심에 두근두근하다.
예를 들어, 아보카도나 비트루트를 넣고 만드는 초콜릿 케이크, 딸기를 사용한 리조또, 블루치즈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이다.
단순히 "과일=단맛=디저트"라는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 당근처럼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은은한 단맛을 디저트로도 활용하고 맛의 균형을 잡는 것에는 많은 연구와 더불어 기본적으로 맛에 대한 감각적 이해가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실험 정신이야말로, 전통적인 클래식 레시피를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컨템포러리 베이킹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몬디저트에 허브인 "바질"이 들어갔다는 것에서 귀를 쫑긋했다.
그러면서 바로 머릿속에 "레몬 + 바질 + 과하지 않은 당분 = 더운 여름날에 어울릴 만한 가볍고 산뜻한 디저트"가 상상되었다.
허브는 보통 요리에 많이 쓰이지만, 디저트에 사용되기도 하는데, 타임, 바질, 타라곤, 로즈마리 등 각 허브가 지닌 고유의 향이 가미되면 소량으로도 강력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디저트들은 왜 아니었는가? 💁🏻♀️"
- 🍓 한 개 남은 딸기 디저트:
얇게 만든 미니 롤케이크 위에 크림과 딸기를 올린 디저트는 흔히 보기 힘든 형태이기도 해서 흥미로웠으나, 최근 딸기 디저트를 꽤 여러 번 먹었기 때문에 패스하였다. - 🍮 한 개 남은 바닐라 디저트:
평소에도 그렇지만, 최근 바닐라 디저트를 여러 번 먹었기에 분명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은 받았지만, 새로운 선택을 위해 또 과감히 패스. - 🍫 각각 한 개씩 남은 초콜릿 디저트:
이날 주중 가장 더운 날이었어서, 더운날 초콜릿은 최대한 피한다는 개인적 취향으로 다음을 기약. - ✔️결론: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디저트를 시도해보기로 결정.
뻔하지 않은 레몬 디저트
평소에는 레몬으로 만든 디저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레몬뿐만 아니라 라임, 자몽 등 신맛이나 쓴맛이 강한 재료들의 경우, 그 맛을 상쇄, 또는 보완하기 위해 당을 많이 쳐야 하는 걸 알기 때문인데 디저트를 좋아하지만 너무 단 디저트는 즐기기 어려운 취향이다.
레몬타르트 탐구시간(?)
길이가 약 15cm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생선 통조림 같은 둥글고 긴 형태로 되어 있어 깔끔하게 먹기 편하다.
일단 그 안의 단면이 궁금해서 포크로 절단식(?)부터 들어갔다.
단면
'ㄷ'자 형태로 생긴 타르트 안을 먼저 레몬커드로 채우고 그 위에 크림을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직원분이 말씀하셨던대로 레몬커드는 레몬 특유의 산도는 있엇지만 일반적인 레몬커드만큼 단맛이 강하지는 않았다.
부드럽게 입에서 녹는 레몬커드 위에, 또 다른 부드럽게 녹는 크림이 있는데, 휘핑크림은 아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좀 더 밀도가 있는 듯한 식감이었다.
특히 이 디저트를 고르게 된 데에 큰 기여를 한 바질은 정말 제대로 된 킥이었다.
건조된 바질잎 가루가 아니라, 실제 신선한 바질잎 조각을 넣었는데, 레몬그라스를 연상케 하는 상큼한 느낌도 있으면서, 레몬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면서 평범해 보이는 디저트를 평범하지 않은 맛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아쉬운 마지막 한 입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때마다 '아, 양이 좀 더 많았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그러면서도 또 너무 양이 많으면 먹고 나서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기분 좋게 먹기에 알맞은 양"이라는 게 중요한데, 이 디저트도 그 양이 적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디저트는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어라?).
이번 포스트를 쓴 주요 목적?
구글링으로 검색해서 찾아간 카페인데, 100% 직접 만든 고품질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 치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Goutû par Oven Heaven은 시내에서 좀 떨어진 동네에 위치해 있는데, 보르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을 일은 거의 없을 확률이 높은 구역이다.
길거리만 다녀도 어쩔 땐 현지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을 정도로 외국인들이 많고, 보르도 내에서도 치안이 가장 좋은 구역도 아닌 데다가, 대표적인 관광지가 위치해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점점 보르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아지고 있지만, 파리처럼 장기간 머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면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 면에서도 관광객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진정한 디저트 맛집인 곳을 찾게 되어 이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번 포스트를 쓰게 되었다.
혹시라도 이 포스트를 보고 Goutû par Oven Heaven를 찾아가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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