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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결국 참지 못하고 그 밀크레프를 맛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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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e-crêpes 디저트 맛보기가 목적이었던 두 번째 방문.

지난 포스트에서 재방문 의사 100%라고 소개했던 SHE & HIM 카페를 실제로 재방문하고 왔다.

두 번째 방문의 목적은 브런치 식사가 아니라, 이곳의 시그니처 디저트인 만큼 묘한 자부심이 느껴졌던 밀크레프를 먹어보는 것이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같은 카페를 재방문하게 만든 밀크레프 후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밀크레프 먹으러 다시 찾은 SHE & HIM 카페

어? 데자뷰인가? 왜 어디서 이 뷰를 본 거 같지? (능청)

이렇게 단기간 안에 같은 장소를 재방문하고, 후기 포스팅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가능한 한 이 블로그를 최대한 다양한 이야기들로 채워보려는 마음이었는데, 처음으로 고작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같은 곳을 다시 찾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번 방문을 통해 스스로 부과한 미션이 하나 있었다.

지난번 첫 방문 때, 나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던 모든 이들이 어느 순간 마치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먹고 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곳의 시그니처 디저트인 밀크레프를 먹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번 왔을 때와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의 밀크레프 맛: 바닐라 (예스)

매 한 입이 아쉬운 맛 (우리는 이걸 jmt라고 하기로 했어요)

소박하고 심플한 모습에서 묘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이 카페의 사이트에도 잘 설명되어 있듯이, 밀크레프는 가는 날에 따라 맛이 다르다.

내가 갔을 때는 바닐라맛의 크레프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바닐라 성애자인 나는 뭐가 됐든 (바닐라밥 같은 건 아닐 듯) 바닐라맛은 거절할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바닐라 이외에도, 맛차맛, 차이라떼의 chai 맛 등 매번 다른 한 가지의 맛으로 준비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진을 보고 있자니 지금도 그 맛이 분명하게 기억나는데, 저걸 눈앞에 둔 당시의 내가 부러워진다(?).

지난 포스트에서도 설명했었지만, 못 본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mille-crêpes의 mille은 숫자 1000을 말한다.

Crêpes은 한국에서는 "크레이프"로 불리는 크레프를 말한다.

즉 1000장의 크레프를 말하는 거라는 건데, 그 유래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장의 얇은 크레프 레이어 사이사이를 견고하게 채우고 있는 바닐라크림.

✔️ "밀크레프"의 유래

밀푀유 갸또, 밀푀유나베 등 우리는 이미 "밀푀유"라는 이름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밀푀유는 마치 천 장의 얇은 잎(또는 종이의 장을 뜻하기도 한다)처럼 얇은 레이어를 하나하나 포개 겹겹이 쌓아 올린 페이스트리 디저트를 말한다.
밀푀유나베도 나베에 들어가는 잎을 둥근 형태로 겹겹이 쌓아 넣는 형태의 나베를 말한다.

여기서 "밀크레프"와 "밀푀유나베" 사이에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건 바로 둘 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밀푀유 케이크라고 부르는 "mille-feuilles gâteau" 디저트나, crêpes 자체는 프랑스에서 유래된 것이 맞다.
그런데 이 밀푀유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1985년 "크레프 케이크", "밀크레프"라는 디저트가 일본에서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일본에서 생겨나 프랑스로 역수출(?)된 밀크레프

얼그레이라떼를 곁들인 바닐라 밀크레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씩 사주고 싶은 맛이다(?).
어느 한곳도 뚫리지 않을 것처럼 바닐라크림이 철저하게 크레프 레이어 사이사이를 방어하고 있는 영롱한 모습.

직원분께서 테이블로 갖다주실 때부터 벌써 향긋한 바닐라향이 확 올라왔다.

일단 향도 좋은데, 디저트를 먹기 전 항상 가장 먼저 궁금해지는 건 '당도'인데, 맛을 보기 전 시각적으로 보아도 일단 과도하게 단맛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드디어 시식 시작

조각 케익을 먹을 때 뒤에서부터 먹는 사람도 있고 앞에서부터 먹는 사람도 있는데, 보시다시피 나는 후자에 해당한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늘 두근거리는 첫 포크질 모먼트.

한 입 한 입 모두 음미해 주마, 후후
옴뇸뇸, 뇸냠뇸냠 중.

크레프 한장 한장을 따로 떼어먹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나, 그러면 굳이 케이크 개념으로 먹는 의미가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포크로 과감하게(?) 수직 절단하여 한 입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하면서 느껴지는 첫 맛은 분명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레인보우컬러 등 크레프케이크가 유행했던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굳이 먹으러 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차피 크레프의 맛에 익숙하고, 그걸 여러 장 쌓아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그렇게 대단할 게 없어 보였달까(?).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그러한 나의 선입견은 결코 옳지 못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냥 일반 크레프를 20장을, 30장을, 40장을 겹겹이 쌓아놓고 포크로 잘라먹는다고 이 맛이 나지는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먹으면서 중간중간 접시에 묻어 있는 바닐라크림에 찍어 먹으면 더 부드럽고 맛있어진다.

나처럼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겠지만, 화려한 외관만큼 맛있는 디저트들도 있고, 화려한 외관에 그 맛이 미치지 못할 때가 있고, 비교적 수수하게 생긴 외관에 맛도 그런 디저트도 있고, 소박한 생김새에 비해 그 맛은 감동적인 디저트도 있다.

이 바닐라 밀크레프는 망설임 없이 소박한 생김새 + 그렇지 못한 맛의 조합이라고 해야 한다.

 

먹기도 전에 은은하게 풍기는 바닐라향이 제대로 담긴 바닐라크림으로 한층 더 부드러워진 크레프 레이어들이 입안에서 재미있는 식감을 제공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바닐라향이 밴 크림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쫀득쫀득한 식감인데, 처음에는 한 덩어리로 입 안에 넣었다가 저작질을 하는 동안 하나하나 레이어가 흩어지면서 다시 모이는 느낌이다.

 

당도도 너무 달지 않고 적당히 달아서 음료와 함께 먹지 않고 단독으로만 먹어도 괜찮을 정도이다.

차근차근 무너지는 과정 중에 있는 공든 탑의 모습(?).

머릿속으로는 천천히 여유 있게 음미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뇌의 신호가 손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듯했다.

원래 평소에 식사하는 속도가 아주 빠른 편은 아닌데, 포크로 한 입씩 케이크를 잘라먹다 보니, 침착해 보이는 겉모습에 비해 그렇지 못한 나의 오른손은 나도 모르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포크로 깔금하게 절단되는 밀크레프 케이크의 단면. 크림은 크레프에 흡수된 부분도 있었고, 좀 더 두텁게 발라져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부분도 있었다.

각 크레프 사이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바닐라크림은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바닐라향과 맛이 짙게 난다. 

 

항상 실제 바닐라빈을 넣어 만든 디저트를 먹을 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작은 검은점들이 많이 보이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디저트 재료 중에서도 결코 저렴하지 않은 재료가 바닐라빈인데, 그래도 그 양을 어느 정도 풍부하게 넣어야 특유의 바닐라향이 많이 나기도 하고, 맛도 더 좋다.


얼그레이 라떼 (London Fog)

과거 나는 얼그레이의 라떼화의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 어떤 종류의 우유도 타지 않은 순수한 얼그레이도, 블랙티를 기반으로 한 밀크티도 자주 즐겨 마시는데, 어느 날 한 번 궁금해서 얼그레이에 우유를 섞어봤는데 영 아니었던 것이다.

특유의 플로럴향과 같은 얼그레이를 우유와 섞기에는 뭔가 적합해 보이지 않는 막연한 선입견이 생기게 되었다.

소박해 보이기 그지없는 모습인데, 그저 내가 경험한 맛이 사진을 뚫고 전해질 수 없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내가 간과했던 건, 블랙티와 마찬가지로 밀크티로 마시기에 좋을 만큼 맛이 충분히 진한 얼그레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적절한 티와 우유의 비율이라는 것이다.

 

런던의 안개라는 뜻의 "London Fog Latt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얼그레이 라떼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을 잘 맞췄을 경우에는 일반 밀크티 못지않게 맛있을 수 있다.

차이라떼를 좋아하는데 오랫동안 마시지 않아서, 차이라떼와 얼그레이라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차이라떼는 가을, 겨울과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얼그레이 라떼로 주문했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나는 마지막 한 입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 때까지 성실하게 포크질에 매진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일단 이곳의 밀크레프는 맛적으로는 흠잡을 게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가격이 7유로라는 것인데, 보르도의 다른 디저트 카페나 빠띠씨에 디저트 전문 판매점에서 판매되는 고퀄리티 디저트들의 평균적 가격을 고려했을 때, 양이나 들어가는 재료의 비용, 디저트를 만드는 데에 요구되는 기술력 등을 고려했을 때 6유로 정도가 더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그 맛의 훌륭함은 충분히 입증되었기에,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들러서 라떼와 함께 밀크레프를 먹으러 가볼 생각이다.

다음 번에 올 때는 브런치 메뉴에 디저트로 밀크레프를 먹으러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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