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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 케밥으로 만족스러운 한 끼 먹기 Anat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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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봐서는 특별한 게 전혀 없어보이지만, 보르도 현지인들에게 인기 많은 케밥집 중 한곳이다.

한국에 있을 땐 별로 먹어본 경험이 없었는데, 유럽에 오고 나서 한 번씩 생각나서 먹는 게 바로 케밥이다.

보통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유럽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보르도 시내에만 해도 케밥 판매점이 꽤 많다.

 

케밥은 버거, 샌드위치와는 꽤 느낌이지만, 일단 버거에 비해 한 끼 식사 기준으로 가공 탄수화물의 비율이 적고, 야채의 비중이 훨씬 많다는 장점이 있다.

케밥의 내용물을 둘러싼 얇은 피를 듀럼(durum)이라 하는데, 마치 만두처럼 내용물을 담는 실용적인 기능을 할 뿐, 그 자체로 맛에 있어 크게 기여를 하는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 보르도를 소개하는 다른 포스트에서 보르도 로컬들의 사랑을 받는 터키식 케밥 맛집으로 Anatole을 간단하게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번 포스트에서는 종종 즐겨하는 이곳의 케밥에 대한 후기를 남겨보려 한다.


보르도 최고 케밥 맛집 중 한 곳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맛도 있었으면 하고, 탄단지 영양 구성도 잘 갖춘 걸 먹고 싶을 때 한 번씩 들르는 곳이다.

Anatole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케밥 전문집이다.

앞에 한 무리의 아저씨 관광객들이 단체로 주문하고 있었는데, 바로 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주문하기
주문 메뉴판은 따로 없고, 내부 스크린에 떠 있는 순서대로 정한다.

1 ㅡ   먼저 감자튀김을 주문할 건지 여부를 정한다:
감자튀김 없이 케밥만 원할 경우 7유로, 감자튀김을 추가하면 0.50유로가 추가된다.
사이드메뉴로 따로 감자튀김을 원할 시에는 1유로가 추가되어 8유로가 된다.

2 ㅡ   케밥 /  마리네이티드 닭고기 / 아메리칸 / 페타 (치즈) 베지테리언 / 속을 채운 포도잎 베지테리언 중 선택
 
3 ㅡ   기본 야채: 샐러드 / 토마토 / 양파 / 적양배추 / 오이 /  (체다, 페타 치즈 추가 시 + 1.50유로)

4 ㅡ   소스 선택 (기본 2가지)

대기표를 받고 밖에서 기다리는데, 다음 주문 대기자 친구의 미소가 너무 예쁘다.

기본 케밥 + 야채 + 매콤한 사무라이 소스, Harissa 소스 두 가지를 주문하고 (7유로), 대기표를 받고 밖에서 기다렸다.

주문하고 나서 약 5분 정도 뒤에 주문한 케밥을 받을 수 있었다.


7유로의 소확행

길쭉하게 말려 있는 포장 케밥. 한동안 팔과 손에 선크림을 전혀 바르지 않고 다녔더니 그새 손이 케밥처럼(?) 꽤 많이 탔다.
현장에는 먹을 자리가 없어서 들를 때마다 포장해와서 이렇게 반을 자른다.

반을 자르면 그 안을 고기와 야채가 한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로회전 구이로 익힌 뒤 썰어 넣은 고기가 아주 알차게 가득가득 차 있는 게 마치 왕김밥 사이즈로 속을 가득 채운 XXXL 만두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얇은 랩처럼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듀럼이 풀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뒤 종이팩에 포장해준다.

현장에서 바로 주문한 케밥을 받았을 때는 뜨끈한 상태이지만, 집에 오는 사이 열기가 조금 식은 관계로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줄 참이다.

 

여담이지만, 영국에서는 점심시간부터 저녁시간까지, 길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특히 정장에 배낭을 멘 회사원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길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프랑스인들을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 보르도 시내만 다녀도, 길 가면서 샌드위치나 포장해서 먹는 크레프를 길거리에서 먹는 것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젊은 층에 있어서 더 그런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프랑스도 생각보다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채보다 고기가 더 많을 만큼 고기의 양이 매우 많다. 이렇게 반으로 자른 단면을 보아도 촉촉하게 고기의 육즙과 소스가 잘 버무려져 반들반들한 것을 볼 수 있다.

Anatole의 케밥은 일단 야채보다 고기가 월등히 많다.

야채의 양이 적다는 게 아니라, 야채는 충분히 적당한 양이 들어있고, 고기의 양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케밥을 두 개로 잘라 나눈 표면을 보니, 이상하게도 문득 한국의 제육볶음이 떠오른다(?).

요 상태에서 디종 머스터드소스, 마요네즈, 바비큐 소스, 갈릭소스 등 입맛에 따라 디핑소스를 찍어 먹거나, 코울슬로 같은 샐러드를 함께 곁들여도 좋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케밥 해부해 보기(?)

쿠킹호일을 벗긴 케밥의 자태. 고기는 탄 부분을 거의 못 봤는데, 듀럼피는 화덕에 구운듯 곳곳에 탄 부분이 있었다.

사람마다 입맛 취향에 따라 바삭바삭하거나 아삭아삭한 식감이 중요한 요소인 사람들한테는 겉바속촉 감자튀김을 주문하여 같이 곁들여 먹으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나는 사이드메뉴 없이 본 음식만 먹을 때, 그 음식 자체 고유의 맛과 구성 재료들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감자튀김 없이 먹는 것도 좋아한다.

평소에는 먹으면서 그 단면만 보게 되는데, 이날은 '속이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이렇게 맛있을까' 하는 이상한 의문이 문득 생겼다(?).

얇은 듀럼피를 살짝 들추어 보았더니, 속을 가득 채운 고기 위로 신선함을 담당하는 야채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양파와 적양파 모두 이미 살짝 익힌 상태로 넣은 듯 하다.

잘 만든 균형 잡힌 샌드위치도 좋아하지만, 위에 덮인 빵을 안 먹을 때가 많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듀럼 케밥처럼 정제 탄수화물 비율이 높지 않은 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평소 소화 능력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특히 점심식사에는 식사 후 속이 더부룩하거나 불편할 것 같은 음식은 피하게 되는데 이렇게 높은 비율의 단백질과 그 단백질을 거들어 주는 알록달록 다양한 색의 신선한 야채까지 거들어주면 점심이든, 저녁이든 든든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엥? 근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아무리 봐도 생뚱맞아 보이는 녀석.

그렇게 늘 그렇듯 케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치아 사이즈만 한 뭔가가 투둑 하고 접시 위에 떨어졌다.

뭐지 싶어 자세히 보니 석류알이 있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케밥을 먹어봤지만, 이렇게 랩 스타일의 듀럼 케밥을 먹으면서 석류알이 들어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한 입 배어 물었을 때 입 안에서 오돌토돌한 질감을 느끼자마자 뭔가 싶었는데 그게 석류알이었다니.

실제 케밥에 들어가는 재료 목록에는 없었는데, 기본으로 들어가는 야채샐러드에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석류도 터키를 포함한 전형적인 지중해식 식재료 중 하나인데, 샐러드나 고기 요리를 할 때 야채와 함께 토핑처럼 올리기에도 은근 잘 어울린다.

매운맛을 없앤 제육볶음 고기맛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먹어도 먹어도 계속해서 고기가 후두둑 떨어진다(?). 먹으면서 내내 쏟아져 나오는 고기 때문에, 입이 엄청나게 크지 않은 나는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게 더 편했다 🥲

실제로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맛이 별로인 케밥은 고기가 건조하고 입안에서 텁텁한 느낌이 나거나 간이 너무 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곳의 케밥은 정말 간이 정말 아주 딱 적당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영국에 있을 때도 케밥을 먹어본 경험이 많은데, 십중팔구 짭조름하게 간이 간간한 게 일반적이었다.

먹다보니 고기랑 야채를 쏙 빼서, 퀴노아나 밥에 곁들여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의외로 김치랑 같이 먹어도 괜찮을 것 같고?

고기는 살코기가 대부분이지만, 적당히 지방질도 섞여 있어서 부드럽고 촉촉한 맛이 끝까지 유지된다.

 

처음에는 1/2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먹고 나서 1시간 있다가 그렇게 나머지 반도 싹 다 먹어치웠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현장에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 자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우측에 보이는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린다.
대기표를 받고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

유럽에서 케밥집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특히 가격이 저가인 음식인 만큼, (특히 술 먹고 나서 많이들 먹는) 일종의 패스트푸드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곳들이 있어 실제로 주변에 케밥을 사 먹고 나서 배탈이 난 경험이 있는 프랑스인들이 있다.

 

체인버거의 경우 고품질 재료를 사용하진 않아도 위생은 엄격하게 관리되는 편인데 반해, 케밥은 체인점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 제대로 알아보고 맛도 있지만 위생 관리도 잘 되는 괜찮은 곳을 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Anatole에서 케밥을 사 먹어본 경험이 여러 번인데, 아직까지 한 번도 먹고 나서 속이 안 좋거나 탈 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실제로 먹을 때도 패스트푸드를 먹는 느낌은 전혀 없다.

불량식품들이 흔히 그렇듯, 자극적인 맛으로 먹는 이를 현혹하는 경우가 많은데, Anatole의 케밥은 짜거나 자극적인 맛과는 거리가 멀다.

 

혹시라도 보르도를 여행하던 중, 중간에 출출하거나 저녁에 술 한 잔 하고 뭔가 출출할 때 꼭 한 번 가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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