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어느 저녁, 저녁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던 중 다분히 우연히 한 음식점 앞을 지나가게 됐다.
일단 처음 눈길을 끌었던 건, 유독 하얗고 파란 외부의 모습이었는데, 이미 Gyraya라는 이름과 블루&화이트 조합을 보고 그리스 요리를 하는 곳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호기심에 궁금해서 안쪽을 들여다봤더니, 이미 여러 사람이 입구 바로 근처에 있는 스크린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냥 한 번 들어가서 어떤 음식들이 있나 구경만 하고 가야지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실제 주문을 하고, 이름을 입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보르도에 딱 한 곳, 몽펠리에에 두 곳의 지점이 있는 이곳은 건강한 음식을 즐기는 젊은층에게 인기를 많이 끌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을 두루 갖춘 Gyraya를 소개한다.
Gyraya 입구
주변에 저렇게 새하얗고 새파란 컬러로 꾸민 곳이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튄다.
밖에 있는 테라스 자리도 테이블, 의자 모두 화이트 컬러로 통일해서 더더욱 눈에 띈다.
그리스를 비롯한 터키, 레바논 등 지중해권 나라들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하게 생긴 납작한 빵을 먹는다.
그리스에서는 둥글고 납작한 빵을 피타(Pita)라고 하며, 터키 케밥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로로 회전 구이한 닭고기나 양고기에 차지키소스(tzatziki), 야채를 넣고 타코처럼 말아서 먹는 것을 피타 기로스라고 한다.
주문
프랑스어로 formule [포흐뮬]은 세트 메뉴, bol은 영어의 bowl을 뜻한다.
간단하게 단품 메뉴만 먹을까 하다가 그냥 음료(boisson)와 함께 세트로 주문하기로 했다.
이곳에 가기 며칠 전 버거를 먹었기에, 피타처럼 빵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좀 더 곡물(?)스러운 게 더 당기는 관계로 보울을 택했다.
평소에 퀴노아를 좋아하기 때문에 닭고기+퀴노아 불구르(bulgur)를 기본으로 하고, 레드 칠리, 파프리카, 토마토를 넣고 만든 핫 칠리 스파이시 소스, 야채는 방울토마토, 오이, 적양파, 그리고 마무리로 참깨 토핑으로 주문했다.
개인적 취향일 뿐이지만, 지중해권 나라들의 식사 요리는 무척 좋아하지만, 디저트는 입맛에 그리 맞지 않아 되도록 먹지 않는 편이다.
터키, 그리스, 레바논 등 일부 중동 국가들의 디저트는 밀가루와 꿀, 견과류를 주로 사용하는 단맛이 매우 강한 디저트를 즐겨 먹기 때문인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우 좋아하지만 호불호가 나뉘기 쉽다.
나는 디저트는 개인적으로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의 디저트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원하는대로 나만의 메뉴 구성 가능
보울의 경우, 정해진 메뉴들 외에도 기호와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재료를 골라 자신만의 보울을 구성할 수 있다.
기본 탄수화물 종류를 정하고 나서, 단백질(고기, 팔라펠 등)을 고른 뒤, 곁들여 먹을 야채와 소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핑을 정한다.
토핑은 칼라마타 올리브 오일, 참깨, 그리스 오레가노, 기름에 튀긴 어니언 플레이크🧅가 있다.
평소 안 먹어본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리스 요리만큼은 가장 기본적인 재료들이라 할 수 있는 오이, 토마토, 적양파를 고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울의 경우, 야채는 총 세 가지를 고를 수 있고, 추가 단백질(고기, 팔라펠 등)과 마찬가지로 그 이상부터는 별도 비용이 추가된다.
오이, 토마토, 적양파, 요거트.
지중해 요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그리스 음식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재료들이다.
외식할 때 되도록 아는 맛은 피하려 할 때가 많지만, 때로는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다.
참고로 아직까지도 건강에 가장 좋은 음식으로 잘 알려진 지중해식 식단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조리되지 않은 신선한 야채, 샐러드 잎, 완전히 익혀진 곡물류 등에 꾸덕한 그릭 요거트, 페타 치즈, 올리브, 올리브유, 오레가노 등 허브 등만 있어도, 신선한 재료의 조합만으로도 얼마든지 맛있고 건강한 한 끼를 만들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직접 좋아하는 재료들을 모아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위 사진의 왼쪽 하단에 보이는 미트볼 같이 생긴 것은 팔라펠인데, 그리스와 일부 지중해권 중동 국가들에서 많이 먹는 팔라펠은 채식주의자들의 사랑을 받는 식물성 단백질 음식 중 하나이다.
맛도 좋고 건강한 식사
기계로 자동 주문할 때, 원래는 포장해갈 생각이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이미 저녁 7시 반이라 주문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먹기로 마음을 바꿔 주문을 마치고, 바로 직원분들한테 가서 현장 식사로 변경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깜빡하신 직원분들은 포장 용기에 담아주셨는데, 원하면 매장용 용기에 담아준다고 했지만, 안그래도 바쁜 직원분들을 번거롭게 하기 싫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 괜찮다며 포장용기채로 먹기로 했다.
이렇게 사진만 보면 별로 특별할 게 없어보일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집에서 재료를 다 구매해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음식도 막상 시간이 안 될 때가 있어 이렇게 밖에서 한 번씩 깔끔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줄 때가 있다.
애초 소스를 고를 때, 오랜만에 매콤한 게 당겨서 오리지널 그릭 스타일대로 요거트를 선택하려다가 그냥 핫칠리소스로 주문하길 잘했다.
요거트를 넣어서 먹으면 좀 더 깨끗하고 순수한 그리스 요리의 맛이었겠지만, 평소 익숙했던 지중해식 스타일과는 또 다른 색다른 맛의 조합이었다.
깨 토핑은 시각적으로는 존재감이 분명하지만, 구운 깨가 아니어서 그런지 깨 고유의 고소한 향이 많이 나진 않았다.
(그냥 오메가6를 충분히 섭취했을 뿐인 거다(?))
보울 아래에 곱게 깔려 있는 퀴노아 불구르에 닭고기와 야채, 그리고 핫칠리소스를 적당히 섞어 그대로 입에 넣었다.
맛있다.
이날은 저녁에 먹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점심 식사로 생각날 것 같은 깔끔한 맛이었다.
닭고기가 건조하고 조금은 텁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식감도 다양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매콤한 소스가 각 재료를 하나의 맛으로 잘 섞어 모아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서 건조한 느낌은 없었다.
사실 지중해식 요리에서 특히 고기를 구워서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종종 수분이 빠지고 건조하고 퍼석해질 때가 있다.
양고기는 자체가 지닌 기름기가 워낙 많아 구워도 기름기가 있어 건조한 경우는 거의 없고, 상대적으로 지방질이 적은 닭고기가 구워서 익혔을 때 건조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그리스 요리에서는 차즈키소스나 요거트를 기반으로 한 다른 여러 소스들이 발달되어 있어 보완이 된다.
거기에 촉촉한 수분이 그대로 담겨 있는 다양한 종류의 야채와 곁들여 먹으니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는다.
아무튼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전혀 색다른 조합을 시도해보고 싶은데, 그때는 팔라펠에 차즈키소스, 석류알 등 좀 더 신선한 재료의 조합으로 보울을 먹어볼 생각이다.
누군가는 '별로 대단할 거 없이 재료들만 잘라서 조합해놓은 거 아니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맛있는 음식은 우수한 품질의 각 재료가 지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도록 인공적 조리를 최소화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그리스 요리는 일본 요리나 정갈한 한정식처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순수한 맛'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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