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번 올리 적이 있는 보르도 Rue Saint-Rémi에 위치한 Fufu Ramen을 다시 한번 찾았다.
평소 국을 먹을 때도 국물보다는 건더기 위주로 건져먹는 '건더기파'이지만, 때때로 영혼까지 따뜻하게 데워줄(?) 뜨끈한 맑은 육수 국물이 있는 음식이 당길 때가 있다.
그렇게 오랜만에 라멘을 먹으러 가기로 하고, 보르도 시내에 있는 라멘 레스토랑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볼까 했는데, 그중 옥수수 알갱이가 보이는 (이상하게 옥수수를 넣은 라멘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다) 곳도 있었고, 실제 일식 느낌보다 현지화가 더 많이 된 것처럼 보이는 라멘 사진들을 보다 보니 결국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는 Fufu Ramen을 다시 가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보르도 시내에서 일본 라멘 맛집이라고 할 수 있는 Fufu Ramen의 라멘을 소개한다.
- 죄송하지만, 오늘은 매장 식사가 불가합니다
- 네?
누가 봐도 내부에 손님 두 명 밖에 없었는데, 포장만 가능하고 실내 식사가 불가능하다고 안내를 받아 잠시 당황스러웠다.
일시적으로 그런 건지, 그날 저녁까지 내내 포장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특정 기구가 갑자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포장 주문만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가끔 한 번씩 사다 먹는 차한볶음밥을 포장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직원분이 오셔서 조리기구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여 현장 식사도 가능한데, 그래도 포장 주문으로 진행할지를 물었다.
그래서 차한은 그대로 포장 주문하고, 원래 라멘을 먹을 생각이었던 참이었기에, 현장에서 라멘을 먹고 가기로 했다 (욕심좌).
갈 때마다 요일과 시간대에 따라 다른 직원분이 있을 때가 많은데, 공통적인 건, 출신 문화권 상관없이 직원들 간 모든 주문 관련 소통을 간단한 일본어로 한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조금 더 일식집에서 식사를 한다는 손님들에게 더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고수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싶다.
메뉴
원래 평소에는 두툼한 차슈가 푸짐하게 올라가는 차슈라멘(15유로)이 최애 메뉴인데, 이날은 도저히 다 먹을 자신이 없었다.
참고로 차슈라멘은 차슈 고기가 양이 정말 엄청나게 많아서 이날은 차마 다 먹지 못할 것 같은 상태라(이미 가기 전에 간식을 하나 먹고 갔다), 처음으로 기본 라멘(13유로)을 먹어보기로 했다.
✔️ Fufu Ramen의 교자
교자는 먹어본 적이 있는데, 기성제품을 조리해서 파는 것 같기도 하고, 직접 만드는 것 같기도 한데 아마 전자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식감도 괜찮고 맛있긴 하지만, 크기나 양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싼 느낌이 있다.
3개에 5유로인데, 그럼 작은 만두 하나에 2천원이 넘는 것이다 (ㅎㄷㄷ).
예전에 친구와 6피스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 물론 맛은 있었지만 그걸 먹을 바에야 차라리 비비고 야채냉동만두를 사다 직접 익혀 먹는 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기본 라멘
아무리 여름이어도, 라멘을 봤을 때 가장 먼저 기대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뜨끈뜨끈한 라면 국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인데,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보통 눈앞을 뜨끈하게 가리는 연기가 보여야 할 뜨끈한 라멘이 너무 평온해(?)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라멘의 반 정도가 고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양이 많은 고기는 마치 두툼하게 슬라이스한 햄 여러 장을 통째로 국물 안에 빠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대한 고기의 양
Fufu Ramen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고기의 질과 양이다.
보통 나라마다 음식점에서 고기가 들어있는 음식을 주문했을 때 평균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양이 있는데, 이곳은 그 표준을 월등히 넘을 정도로 고기 양이 푸짐하게 들어가는 압도적인 양이 특징이다.
구성 재료
죽순
라멘을 먹을 때 좋아하는 만나면 반가운 재료 중 하나가 바로 '죽순'이다.
죽순을 간장 소스 같은 것에 넣고 미리 조리한 뒤에 고명처럼 넣어주는 것 같은데, 먹을 때마다 항상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고 아쉬움이 들만큼 특유의 아삭한 식감도, 맛도 좋다.
김과 숙주
존재감 강하게 들어간 고기와 숙주, 죽순에 비해 수줍은 자태로 작고 소박하게 들어간 김 녀석.
젓가락으로 집어 라멘 면을 감싸 한 입 먹어주기에 딱 좋은 사이즈이다.
평소 국물이 충분히 뜨거울 때는 라멘을 먹다 보면 생으로 넣은 숙주가 몇 분 내에 적당히 익었는데, 이날은 국물의 온도가 애매해서 아삭한 숙주의 비릿한 맛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반숙 달걀
원래 평소 먹는 차슈라멘은 계란이 반으로 잘라져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 기본 라멘의 반숙 계란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마치 스카치에그를 반으로 가를 때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계란노른자의 상태부터 살피며 직접 반으로 갈라 보았는데, 역시나 부드러운 반숙 상태였다(사실 조금 덜 익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본격적인 잇츠 라멘 타임
돼지뼈를 오랜 시간 우려낸 사골국물처럼 고소하고 묵직한 육수가 특징인 돈코츠라멘은 특히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반면, 여름에는 간장 베이스로 더 가볍게 만든 육수의 쇼유라멘 같은 라멘이 더 생각난다.
고기는 큰 덩어리로 익힌 뒤 약 8mm 정도의 두께로 잘라 넣었는데, 조리가 완벽하게 되어 덜 익었거나, 너무 푹 익어서 흐물흐물 해진 느낌 없이 적당히 단단하면서 한 입 베어 물면 기분 좋게 부드러운 식감이다.
보통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따로따로 하나씩 먹는데, 입 안 한가득 와앙 넣고 우물우물 먹고 싶을 때는 이렇게 면과 고기를 함께 먹기도 한다.
특히 면과 고기를 함께 집어 국물에 몇 번 담금질(?)을 해서 촉촉한 상태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 집의 차슈라멘을 여러 번 먹어서 그 맛을 또렷하게 기억하는데, 이번에 먹은 기본 라멘은 차슈라멘에 비해 고기가 살짝 좀 더 질긴 느낌이었다.
사용된 고기의 부위 자체가 다른 것인데, 고기를 먹다가 몇 번씩 입으로 베어물 때 살짝 질긴 부분들이 있었지만 간도 적당히 되어 있고, 일단 두툼해서 좋다. 먹다 보면 수육으로 사용되는 돼지고기를 크고 두껍게 요리한 듯한 느낌도 있다.
총평
- 국물은 언제나 그렇듯 맛있다.
- 맛도 있지만 일단 양이 정말 푸짐해서 보르도 시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라멘집인 이유가 있다.
- 갈 때마다 느끼지만, 고기가 들어가는 모든 메뉴에 고기의 양이 엄청나게 많다.
충분히 배가 고프지 않으면 반도 다 먹기 힘들 수도 있지만 대식가들에게는 완벽한 한 끼가 될 것이다. - 단지 이날은 평소와 달리 요리해주신 분께서 살짝 서두르신 것 같아, 온도가 충분히 뜨겁지 않아 면이 살짝 덜 익은 느낌이 들었고, 숙주의 숨이 죽지 않아 다소 아쉬움이 들었다.
- 2유로의 차이지만, 차슈라멘(15)이 기본라멘(13) 보다 확실히 더 맛있고, 그 구성도 더 알차다.
- 파가 좀 더 많았으면 좋을 것 같지만, 개인적 취향일 뿐이다.
- 라멘을 포장 주문해본 적이 있지만, 면은 확실히 그 자리에서 먹고 가는 게 제일 맛있다.
- 질 대비 가격 측면에 있어 훌륭하다.
- 여행중 국물이 있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 가면 후회하지 않고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곳으로 추천한다.
옆자리에 네덜란드인으로 보이는 한 가족 관광객이 있었는데, 음식을 만족스럽게 먹고 있는 부모에 비해 어린 딸들 중 한 명은 엄마, 아빠 때문에 억지로 주문한 야끼소바를 꾸역꾸역 먹고 있는 듯했다.
옆에 있던 어린 동생은 또 잘 먹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들도 외국 음식에 대한 입맛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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