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보다는 피자, 버거보다도 피자라고 할 만큼 피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자주 먹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한 번씩 피자 수혈(?)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보르도 시내에도 많은 피자 레스토랑이 있지만, 그중에서 최근 머문 호텔이 위치한 Chartrons 구역에 있는 한 피자 전문점을 찾게 되었다.
평소처럼 보르도 지점에 대한 댓글들 몇 개를 읽어보니 유독 피자 도우가 식감이 좋고 맛있다는 평들이 여럿 보였다.
알고 보니 보르도에 유일하게 한 곳이 있는 프랑스 피자 체인점이었는데,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피자 체인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남부에는 몽펠리에에 두 곳, 그리고 내가 갔던 보르도 지점이 유일했는데, 보르도에는 딱 한 곳만 있고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우연히 알게 된 프랑스의 인기 피자 체인점 PIZZA COSY 첫 방문 후기를 담는다.
PIZZA COSY Bordeaux
"Chaud'rizo 피자 하나 주세요! (당당)"
...
(10분 후)
(어라? 잠깐만. 내가 시키려던 피자가 이게 아니었는데..? -_-)
원래 시키려고 했던 피자는 시즌 특별 메뉴 중 하나였던 Chakchouka라는 피자였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묘하게 이름이 비슷한 Chaud'rizo [쇼리조] 피자를 시켜버린 것이다(?).
뒤늦게 내가 주문하려고 했던 피자는 원래 다른 피자였다는 걸 깨닫고 나서, 내면은 조용히 폭풍 혼돈 모드였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며(?) 기다렸다.
그러다 사실 막연한 느낌이었지만, 웬만하면 대부분 피자가 다 맛있을 것 같은 직감이 있어서 그냥 믿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주문이 들어가고 직원분들이 만들고 계셔서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직원 한 분이 회원 등록이 되어있는지 묻고는, 첫 방문이라고 하자 회원 등록 의사 여부를 물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등록하고 회원등록을 하고는 여기저기 주변을 둘러보며 피자를 기다렸다.
한 가지 신선했던 점 중 하나는, 체인 피자점인데 무려 와인 냉장고까지 놓고 와인도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피자+와인 조합을 매우 좋아하는데, 오래 전 일이지만, 한 때 금요일 저녁에는 프렌즈를 보면서 와인과 함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피자를 먹는 루틴이 있었을 정도이다.
디저트 아이스크림들도 가득 차 있었는데, 체인 피자점 치고 나름 독특한 맛의 아이스크림들이 많았다.
Barbe à papa [바흐바 빠빠]는 솜사탕을 말하는데, 솜사탕맛 아이스크림도 있고, 마다가스카르 bourbon 바닐라맛, 캐러멜+버터+sel de guérande 맛, 탄자니아 다크 초콜릿맛 등 흥미로운 맛들의 아이스크림이다.
주문한 피자가 준비되는 데까지 한 10분~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체인점이다보니, 방문 주문 뿐만 아니라, 온라인 주문도 같이 준비해야하는 것 치고, 그래도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은 것 같다.
주문하신 피자나왔습니다!
Chaud'rizo 피자
프랑스어를 한다면, 이 피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바로 "언어유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어로 "쇼"라고 발음하는 Chaud는 뜨겁다는 뜻으로, 영어의 hot에 해당한다.
거기에 "초리소"나 "초리조"로 표기되는 chorizo는 이베리아반도 유래의 짭조름한 붉은 소세지를 말한다.
즉 Chorizo의 "Cho-" 대신 뜨겁다는 뜻의 프랑스어 형용사 chaud를 붙여 "Chaud'rizo"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이름으로 피자의 주재료가 이베리코 소시지인 초리소라는 힌트를 준다.
🍅 PIZZA COSY Chaud'rizo 피자
이 피자는 토마토소스 + AOP 에스플레트 고추 + 조리된 양파 + Provola 스모크드 이탈리안 치즈를 주재료로 하고,
거기에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과 바질 허브 잎을 얹어 마무리 한 스페인 느낌 물씬나는 '열정적인(?)' 피자라고 할 수 있겠다.
스페인 요리에는 오일이 많이 들어가는데, 확실히 스페인 스타일의 느낌이 강한 피자였다.
초리소 햄은 특히 요리할 때 고추기름 같은 붉은 오렌지색의 오일이 나오는데, 이 피자에도 곳곳에 초리소 자체가 품고 있는 살짝 매콤한 오일이 곳곳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원래는 햄, 소시지 등 가공육을 먹지 않는데, 최근 평소 먹지 않는 음식들을 먹어보기로 했어서 그냥 먹기로 했다.
피자를 주문하기 전 전체 메뉴를 훑어 봤을 때 가공육이 들어가지 않는 피자가 얼마 없었는데, 그마저도 그다지 마음에 드는 피자가 없었었다.
(사실 하나 있었는데, 그 피자에 대한 후기는 조만간 따로 올릴 예정이다, 후후)
그래서 주문할 때 가공육을 따로 빼달라고 부탁할까 했지만, 그러면 가격 등 여러모로 혼란이 올 것 같아 오랜만에 그냥 먹기로 했다.
치즈
평소 프랑스 현지화된 피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fromages râpés라고 하는 그라인딩한 치즈인데, 일반적으로 emmental 치즈 같은 전형적인 프랑스 치즈를 얇고 길게 그라인딩하여 흝어진 형태가 흔하다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피자를 먹어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도 치즈 두께가 얇아 보이는 곳이 없을 만큼 치즈를 꽉 채운 치즈를 보니 오랜만에 참 반갑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서 접하는 피자들은,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국 피자에 비해 그 토핑의 양이 일반적으로 덜 많은 편이 많다.
그리고 한국피자에 비해 들어가는 재료의 종류도 꽤 다르다.
이제는 불고기, 등심살, 닭고기, 새우, 고구마, 감자, 단호박, 옥수수 등 올라가는 토핑의 종류가 매우 광범위해진 한국 피자에 비해, 유럽의 피자는 좀 더 클래식한 토핑 재료들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모짜렐라, 버팔라 치즈 등의 이탈리아산 치즈를 포함해, 이탈리아 요리에 자주 들어가는 올리브, 앤초비, 그리고 다양한 허브 등이 사용된다.
그리고 소스 옵션도 갈릭소스, BBQ 소스 등 다양한 한국에 비해, 보통 매운맛을 더하는 칠리 오일(핫소스라고 볼 수 있겠다) 정도가 가장 흔하다.
Chorizo와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조리된 양파와 염분기를 제어해주는 담백한 치즈,
그리고 향긋한 향을 더해주는 바질
토핑
얇게 슬라이스한 초리소들이 깔려 있고, 그 사이사이 양념을 넣고 조리한 양파가 있어 토마토+치즈의 깔끔한 기본 조합인 마게리타 피자와는 다른 짭조름하고 풍성한 맛이 난다.
버섯이나 올리브, 파프리카 등 다른 야채가 없이 그냥 초리소와 양파 위주로 만든 단순하지만 집중적인 맛을 공략한 피자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가공육이 그렇고, 또 이베리코 햄류는 더 그렇긴 하지만, 생각보다 염도가 꽤 높았다.
맛은 있었지만, 평소 심심한 간을 더 즐겨 먹는 나로서는 먹으면서 '이거 무조건 내일 얼굴 부을 각인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이더나 맥주를 곁들여 먹었으면 맛도 그렇고 짠맛도 씻어 내려주고 해서 찰떡 궁합이었을 것 같다.
도우
처음 먹어본 피자이지만, 일단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얇은 도우이다.
박스를 열고 흘러 넘칠 것 같이 넉넉히 올라간 치즈를 보고는 그 두께가 이렇게 얇을 줄은 몰랐는데, 막상 잘라서 접시 위에 올려놓고 보니, 토핑이 무거워 손으로 들고 먹으면 흐물해질 만큼 얇았다.
그래서 한 조각 먹을 때마다 일단 나이프와 포크로 절단해서 먹고, 중간 부분부터 손으로 들고 반으로 접듯이 먹어야 겨우 들릴 정도였다.
사실 피자 도우가 두껍고 투박한 아메리칸 스타일 피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만두의 피는 만두 속을, 피자의 도우는 피자 토핑을 거들기만 할뿐이어야한다는 나름의 지론 아닌 지론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프랑스인들도 전반적으로 얇은 도우를 선호하는 편인데, 한국에 비해 프랑스는 도우의 종류나 두께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흔하진 않다.
한국은 도우를 비롯해, 크러스트의 종류도 선택할 수 있지만, 프랑스는 아직까지는 도우와 크러스트 종류의 선택이 가능한 피자리아는 보지 못했다.
사실 체인점 피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큰 기대를 안 하고 그냥 가까워서 갔던 곳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맛 있어서 종종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찾게 될 것 같다.
'Life in Euro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 오픈하자마자 바로 핫플레이스로 등극한 레바논 아이스크림 Pistache (45) | 2024.07.22 |
---|---|
프랑스에서 꼭 한 번은 먹어봐야 할 갈레뜨와 시드르 (19) | 2024.07.22 |
작정하고 찾아간 디저트 카페 (역시는 역시였다) (39) | 2024.07.18 |
먹어도 먹어도 계속해서 고기가 나오는 신묘한 라멘 (39) | 2024.07.17 |
결국 참지 못하고 그 밀크레프를 맛보고 왔습니다 (31) | 2024.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