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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프랑스에서 꼭 한 번은 먹어봐야 할 갈레뜨와 시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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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프랑스 여행 시 현지에서 꼭 한 번은 먹어봐야 할 게 바로 크레프이다.

크레프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식사용으로 먹는 galettes(메밀이 아닌 밀가루로 만든 건 crêpés salées라고 하기도 한다), 후식으로 먹는 crêpes이 있다.

일반적으로 밀가루를 사용해 구워낸 크레프는 좀 더 밝은 노란빛이 도는 반면, 갈레뜨는 보통 sarrasin이라고 하는 메밀 가루로 만들어 밝은 갈색을 띠고, 버터에 얇게 구우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참 맛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보르도 시내에 위치한 Nom d'une crêpe이라는 갈레뜨 및 크레프 전문 레스토랑 첫 방문 후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Nom d'une Crêpe

브레이크타임 없이 오픈 시간 내내 식사 주문이 가능한 것도 큰 장점인 레스토랑.

Rue Saint-Rémi 길을 자주 가는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하다가 최근 드디어 가보게 된 곳이다.

오후 5시쯤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갔어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대에는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관광객들도 많이 찾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크레프/갈레뜨 전문 레스토랑이다.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분한 레드 컬러로 꾸민 레스토랑 인테리어는 식욕을 자극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난색 중에서도 오렌지, 옐로우, 브라운 등 컬러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뜻하지 않게 역동적인 느낌을 더한 사진을 찍게 되었다(?).

내가 갔을 때는 애매한 시간대였던 만큼 손님들이 많지 않았는데, 레스토랑 밖에서 보는 것보다 그 안쪽까지 테이블이 꽤 많아 보였다.

전형적인 보르도식 건물의 아치형 천장을 그대로 살려둔 레스토랑의 모습.

 

 


메뉴

클래식 갈레뜨 1개 + 슈가/초콜릿 크레프 또는 아이스크림 2스쿱으로 구성된 세트 메뉴가 13.90유로이다.

이곳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합리적인 가격일 것이다.

레스토랑 앞에 놓여있는 블랙보드에 적혀진 세 가지 세트메뉴 중에서 첫 번째 13.90유로 메뉴는 평일에만 적용되고, 토/일 주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내가 갔던 날은 토요일 오후였는데, 직원분이 주말인 걸 깜빡하고 13.90 세트 메뉴로 주문을 받았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주말에는 Galette Gourmande (15.90유로) 또는 Galette Extra(17.90유로)만 가능하다고 설명해 주셨다.

갈레뜨 메뉴는 크게, galettes classiquesgalettes gourmandesgalettes extras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 Galettes classiques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가장 일반적인 갈레뜨 메뉴들이 있다.
    주로 햄류와 치즈, 계란 등으로 구성되는데, 중간중간 메뉴에 따라 야채가 들어있기도 하다.
  • Galettes Gourmandes
    프랑스에서 gourmand은 '대식가'를 뜻한다.
    위에서 언급한 클래식 갈레뜨에 비해, 일단 들어가는 재료들이 더 다양하고 많다.
    단백질도 훈제연어, 닭고기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들어가는 야채도 더 다양해서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느낌으로 먹기에 좋다.
  • Galettes Extras
    Gourmandes 버전과 비슷한데, 좀 더 '힘을 준' 듯한 재료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다양한 종류의 재료가 들어가는 것 같고, 양도 많을 것 같다.

디저트 메뉴. 주로 크레프와 아이스크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갈레뜨를 먹기 전, 디저트를 주문할 생각에 디저트 메뉴를 정독했는데, 그중에서 몇 가지에 눈에 들어왔다.

  • Benji ㅡ 프렌치 리큐어 브랜드인 Grand Manier 리큐어를 넣고 *플랑베로 요리한 크레프
    (참고로 *flambé는 고온으로 요리 중에 술을 부어 순간적으로 불을 크게 일으킨 뒤 알코올을 날리는 프랑스에서 개발된 조리 기술이다)
  • Mélodie ㅡ 일단 버터, 캐러멜, 하우스 메이드 솔티드 버터, 샹티이 크림, 구운 아몬드
  • Bryan바닐라 아이스크림, 하우스 메이드 솔티드 버터 캐러멜, 견과류 

갈레뜨에는 빠질 수 없는 시드르

오랜만에 브레타뉴 지방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분위기.

프랑스에서 갈레뜨의 단짝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cidre"라고 할 것이다.

프랑스어로 Cidre라 쓰고 "시드르"라고 발음하는 사이더는, 한국으로 치면 파전을 먹을 때 막걸리를 곁들이는 것처럼 갈레뜨의 짝꿍이라고 할 수 있다 (짝꿍이라는 말을 쓰는데 왜 이렇게 옛날 사람 같지 -_-).

시드르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일종의 사과맥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갈레뜨가 유래한 프랑스 서부의 브르타뉴 지역에서는 갈레뜨 레스토랑이 정말 많은데, Cidre breton이라고 하는 브레타뉴 지역 시드르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정말 맛있다.

시드르로 유명한 브레타뉴 지방에서는 이렇게 둥근 컵에 시드르를 따라 마시는 문화가 있다.

Cidre를 주문할 때, 크게 brut과 demi-sec, doux의 세 가지로 나뉜다:

  • Cidre brut ㅡ 달지 않고 가장 드라이한 시드르
  • Cidre demi-sec ㅡ 영어로 굳이 번역하면 "세미 드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brut에 비해 살짝 단맛이 있지만 강하진 않은 시드르
  • Cidre doux ㅡ 단맛이 좀 더 있는 시드르

참고로 이러한 brut, demi-sec, doux는 샴페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갈레뜨를 먹을 때는 주로 cidre brut을 선호하는 편이라, 바로 brut으로 주문했다.

반면 크레프에 시드르를 곁들일 때는, demi-sec을 곁들이는 걸 좋아한다.

시드르는 갈레뜨를 먹으면서 한 입씩 마셔도 맛있지만, 그냥 그대로 마셔도 맛있다.

평소 술을 안 마시다보니 오랜만에 마셨더니 고작 이 정도 가지고도 살짝 알딸딸한 느낌이 들었다 (굴욕감+1).


갈레뜨

메밀가루로 만들어 색도 그렇고 버터에 노릇노릇, 바삭바삭하게 구워져 나온 갈레뜨.

생각보다 메뉴를 고르는 데 오래 걸렸었는데, 햄을 비롯한 고기가 별로 당기지 않았는데 거의 모든 메뉴에 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일단 대충 "galettes classiques"에서 메뉴 하나를 고르고, 직원분한테 기본으로 들어가는 햄 대신 다른 야채로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크레프는 집에서 혼자 해먹기에는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바로 그렇게 가능하다고 하여 그대로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10분 뒤, 직원분이 다시 오셔서 토요일은 galette classique 메뉴(디저트는 기본 크레프로 그 선택이 제한된다)가 제공되지 않는 게 원칙이라 하여, 이미 주문한 갈레뜨는 그대로 하고, 대신 15.90유로 "galette gourmande" 메뉴로 주문할 경우 디저트는 메뉴 전체에서 아무 디저트나 골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이렇게만 봐도 Bretagne 지방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단 이날 오후에 이것저것 먹고 배가 어느 정도 찬 상태에서 저녁을 일찍 먹게 된 거라, 깔끔하면서 담백한 간단한 식사 한 끼를 먹고 싶었다.

버거보다는 샌드위치, 샌드위치 보다는 토스트를 좋아하는데, 갈레뜨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탄수화물의 양이 적은데 그 맛은 좋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바게트로 만든 샌드위치나 베이글은 온통 흰 밀가루맛 위주인 데다가, 불필요할 만큼 탄수화물의 양도 많아서 영양적으로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가 어렵다.

그에 비해, 그 두께가 얇아 식감도 바삭하고, 메밀로 만들어 특유의 고소한 향도 느껴지는 갈레뜨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이 강하면서도, 그 위에 올라가는 주인공(주재료)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시식

소박한 비주얼이지만 맛만 맛있으면 됐다. 먹기 전에는 그냥 큰 기대는 안 했었는데, 막상 첫 입을 먹고 나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음, 맛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메밀로 만든 반죽을 버터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갈레뜨.

파전을 먹을 때 두꺼운 가운데 부분보다 바삭바삭한 가장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갈레뜨는 그 바삭바삭한 부분만 있는 것보다 더 맛있다(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다).

 

기름기를 많이 머금고 있지도 않고, 고소한 버터의 풍미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는 데다가, 일단 먹는 내내 그 특유의 바삭한 식감이 참 좋다.

갈레뜨를 먹을 때 꽃이라 생각하는 계란 노른자.

주문하기 전 메뉴를 볼 때도, 계란이 있는 갈레뜨 위주로 살펴보았을 정도로, 갈레뜨는 웬만하면 달걀노른자가 있는 게 맛있다.

살짝 터트린 뒤 흐르는 노른자에 갈레뜨를 소스처럼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갈레뜨에 올라가는 계란의 생명은 노른자가 거의 익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갈레뜨를 떼어내 찍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는 천연소스가 따로 없다.

양이 별로 많은 것 같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날 결국 갈레뜨를 완식하고나니, 도저히 디저트를 더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디저트 메뉴판을 다시 훑어보았지만,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먹으면 속이 부대낄 게 분명했다.

 

물론 그 전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간 상태여서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시드르와 함께 먹어서 그런지 더 포만감이 느껴졌던 식사였다.


프랑스에서 다양한 지역을 여행해 봤지만, 브르타뉴 지방이 지닌 고유의 매력이 종종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잠시나마 마치 브르타뉴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싶을 때 가기 좋은 곳이다.

 

최근 보르도 시내에 크레프/갈레뜨 전문 레스토랑(crêperie)이 새롭게 몇 군데 생겼는데, 그런 곳들은 더 세련된 분위기에 모던한 스타일로 재해석한 곳들이라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역시 브레타뉴 지방에서 유래한 음식인 만큼 그 특유의 전통적인 갈레뜨와 시드르는 좀 더 원조맛집 같은 느낌을 준다.

 

한국으로 치면 요즘 세련되고 깔끔한 국밥집들이 많이 생겼지만, 어쩔 때는 화려하진 않아도 기본엔 충실한 원조 정통 국밥집을 찾고 싶을 때가 있듯이, 정통 브레타뉴 스타일의 갈레뜨를 좋아한다면 추천할 만한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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