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보르도 시내에 한 카페가 새로 생겼다.
오픈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기대 없이 들어가 봤는데, 웬걸, 너무나 예쁜 디저트들이 진열대에서 가지런히 정렬된 작은 보석들처럼 반짝반짝 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평범한 디저트 카페는 아니구나'라는 촉이 바로 왔다.
그 뒤로 한 번씩 들러서 디저트를 사는데,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디저트가 반겨줘서, 음료만 마시러 들어갔다가 어쩔 수 없이(?) 디저트까지 같이 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보르도의 훌륭한 디저트 카페, Bergamot의 디저트에 대해 소개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나만의 디저트 보석함 공유
예쁘기도 한데, 맛있기까지 하니, 이건 뭐 반칙 아닌가?
원래 안경을 껴야 잘 보이는데, 그냥 봐도 모두 형태나 디테일, 들어간 재료가 뚜렷하게 잘 보일 정도로, 각 디저트는 고유의 개성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클래식한 스페인 디저트 중 하나인 플란은 멀리서 봐도 바닐라빈의 작은 검은 점들이 보일 정도로 넉넉하게 바닐라빈을 사용한 티가 났다.
그 옆에 있는 Baba Chocolat [바바 쇼콜라]라는 디저트는 처음에는 Brest인 줄 알았다가 자세히 보니, 머핀 재질처럼 보이는 둥근 케이크 위에 카드멈과 초콜릿 크림을 듬뿍 올린 진정한 초콜릿 팬들을 위한 디저트였다.
당연히 맛있음으로 단단히 무장해보이는 디저트였지만, 여름에는 되도록 초콜릿 디저트를 자제하려는 편이기 때문에 일단 선택에서 제외했다 🙄
이렇게 나란히 정렬에 맞춰 진열되어 있는 디저트들을 보고 그저 '역시'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일단 우측에는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는 스테디셀러 클래식 아이템들이 보이고, 좌측에는 제철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봄 느낌 낭낭한 디저트들로 꽃단장한 진열대는 그저 감탄을 자아낼 뿐이었다.
🍑 Abricot & Sureau
살구 & 엘더베리
Pâte sucrée, crème d'amande, compotée d'abricot, crème vanille/sureau, extraction d'abricot
당을 첨가한 비스킷 베이스, 아몬드 크림, 살구 콩포테, 바닐라+엘더베리 크림, 살구 추출액
이날 가장 단번에 시선을 잡은 디저트였다.
일단 들어간 주재료가 살구, 엘더베리라는 것도 그렇고, 전체적인 재료와 컬러 배합을 봤을 때, 다른 디저트들에 비해 유독 더 여름날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로 적합해 보였다.
🧁 La Rhubarbe
Bavaroise verveine, Insert rhubarbe/hibiscus, biscuit amande/ververne, rhubarbe
바이베른 버베나, 루밥+히비스커스 인서트, 아몬드+버베나 비스킷, 루밥
한국에서는 원재료 그 자체로도 보기 힘든 루밥인데, 루밥으로 만든 디저트는 더더욱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 한 번씩 유럽 여행을 왔다면, 분명 이 루밥 디저트부터 시켰을 것 같다(평소 잘 못 먹어보는 것이니까).
카페에서 직접 주문해서 디저트를 먹고 나서, 루밥을 유독 좋아하는 프랑스인 친구가 떠올라 포장 주문했다.
🍫 Baba Chocolat
Savarin cacao, sirop cardamome, chantilly chocolat au lait, sauce caramel/cardamome
카카오 *사바랭, 카다멈 시럽, 밀크 초콜릿 샹티이 크림, 캐러멜+카다멈 소스
*Savarin은 19세기에 개발된 럼 시럽을 적신 고리 형태의 프랑스 케이크를 말한다.
🍓Pavlova
Meringue suisse, chantilly mascarpone,
compotée de fruits rouges, fruits frais, extraction de fraise
스위스 머랭, 마스카포네 샹티이 크림, 레드 프룻 콩포테, 생과일, 딸기추출액
귀여운 크기부터, 하나씩 다양하게 골고루 올라간 베리 장식에 레드 프룻 콩포테까지, 정말 프렌치 스타일답게 만든 파블로바 디저트.
개인적으로 머랭을 좋아하지 않아서 구매할 일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막상 먹으면 충분히 맛있다고 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다(?).
카페 내부
입구에서 내부 왼쪽에서 주문을 하면 되는데, 그 옆에 그리 크지 않고 다소 소박해 보이는 유리 진열대가 놓여 있다.
얼핏 보면 심플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놓여 있는 디저트들은 매번 갈 때마다 놀랍기 그지없다.
한동안 새로운 카페 탐방을 다니느라 오랜만에 들르게 되었는데, 예전에 봤을 때(다른 계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다 훨씬 색감이 화려해져 있었다.
내부에는 테이블 수가 많지는 않지만, 둘, 셋 정도 앉아서 도란도란 수다 떨기에 적합한 정도의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내부 인테리어에 조금만 더 투자했다면, 훨씬 더 인기가 많은 곳이 되었을지 않을까 싶다.
지나갈 때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지만, 전반적인 실내 분위기는 꽤나 평범해 보이는데, 막상 판매하는 디저트나 음료는 분위기 대비 기대치보다 훨씬 훌륭하기 때문이다.
주문한 디저트
ABRICOT & SUREAU
프랑스어로 "Abricot & Sureau"는 살구와 엘더베리를 말한다.
직관적인 그 이름에 걸맞게, 디저트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풍성한 아몬드 크림 위에 작은 살구 조각과 앙증맞은 엘더베리꽃이 한켠에 앙증맞게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일단 디저트를 먹을 때 저렇게 '액체'를 보는 것은 다소 드물지 않나 싶은데, 천연 살구의 과일즙을 담아낸 것 같았다.
바닐라빈 씨가 곳곳에 박혀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그 형태가 유지되는 아몬드 크림 위에는, 디저트에 들어간 주재료에 대한 힌트를 주는 작은 살구와 엘더베리, 그리고 조그만 잎이 얹어져 있다.
마치 한 입씩 떠먹을 때마다 부분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접시 위 '작은 뷔페'와 같은 인상마저 준다.
이 디저트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바로 '불필요하게 이유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요소는 없다'는 것이었다.
각 요소는 단순히 장식 요소로서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그와 더불어 미각적 기능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마치 호텔에서나 먹어볼 법하게 생긴 생김새인데, 현지 물가로도 합리적인 5유로대에 판매되고 있어, 그야말로 가격 대비 우수한 질의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본격적 시식 타임
부드러우면서도 아몬드 크림의 형태가 잘 유지되는 것은 소량의 젤라틴을 넣어서 그렇지 않았나 싶은데 정확한 정보는 설명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버터를 넣은 비스킷 베이스과 두툼하게 올려진 크림 사이에 살구 조각들이 섞인 잼과 같은 레이어가 있었는데, 단맛이 강하지 않은 크림과 새콤달콤한 살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맛이었다.
먹으면서, 각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을 상상해 보면서, 디저트를 구상할 때 어떤 과정일지에 대한 호구심이 마구마구 생겼다.
특히 다양한 재료 조합들의 구성뿐만 아니라, 크림은 크림대로, 비스킷은 비스킷대로, 디저트 전체에서 차지하는 각 요소들의 비율에 대한 밸런스도 디저트 맛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것도 많은 연구가 요구되었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음번에 가면 분명 완전히 다른 디저트들이 진열대에 놓여 있을 텐데, 그건 그거대로 좋지만 워낙 입맛에 잘 맞았던 디저트라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된다면 충분히 재주문할 의사가 있을 만큼 만족스러웠던 디저트였다.
넌 참 훌륭한 디저트였어 👍
플랫화이트
역시 평소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데 이날은 그냥 커피를 마셔보기로 했었다.
그렇게 주문한 플랫화이트.
기본적으로 설탕이나 시럽을 넣어서 나오지 않고, 단맛을 첨가할지 직원분이 물어보시는데 나는 단 커피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부탁했다.
디저트와 함께 마시는데, 오랜만에 만든 커피였지만 흐리멍텅하고 애매모호한 맛이 아닌 커피다운 커피맛이 나는 음료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남은 이 플랫화이트 한 모금을 마실 때까지, 앞으로 다가올 위기 아닌 위기를 전혀 직감하지 못했다(?).
바로 그날밤, 새벽 4시까지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 카페인 취약자의 비애여).
밤새 왜 갑자기 이렇게 정신이 말똥말똥하지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다가 그날 오후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플랫화이트 한 잔을 마셨던 게 생각났다.
평소 커피를 즐겨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무리 없을 만큼의 카페인 보유량일 것이라 짐작한다.
포장 주문
디저트와 커피를 다 마시고 뭔가 그냥 가기 아쉬워서, 종류가 다른 케이크 두 개를 포장 주문했다
(어떤 디저트들을 주문했는지는 다음 포스트가 올라올 때까지 비밀로 하겠다).
마무리
프랑스에 살면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잊을만하면 실감하게 되는 것이지만 우수한 품질의 음식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우수성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인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 종류의 방대함과 조리 테크닉 측면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 미식의 나라에 있어 라이벌로 여겨지는 이탈리아 요리에 비해서도 훨씬 다양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날 카페 현장에서 먹은 디저트와 음료에 대해 소개해봤지만, 다음 포스트에서는 포장해 간 디저트에 대해 간략한 포스트를 올려볼까 한다.
(7월부터 일주일간 피레네산맥에서 휴가를 보내고 와 한동안 블로그를 신경 쓰지 못했는데, 이제 다시 차곡차곡 블로그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기록해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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