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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유럽에서의 첫 캣카페 경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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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하다가 입장하게 되면 카페에 있는 고양이들의 이름과 가족 관계를 하나하나 빠르게 설명해주신다.

포스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블로그에 '유럽에서의 캣카페 경험 후기'라는 글을 쓰게 될 줄 미처 몰라서 스스로도 조금 당황스럽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쓸까 말까 고민을 여러 번 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일단 첫 번째는 이 포스트는 이전 다른 포스트들과 다르게 특정 장소의 방문을 '추천'하기 위해서가 아닌, 굳이 가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도 동물 카페를 안 가는 데다가, '정말 느낌이 좋아서' 가본 것보다는 스스로도 이해 못 할 단순 호기심에 이끌려 가본 장소라는 것이다.

고민 끝 결국, 이번 포스트는 보르도 여행 시 가볼 만한 '추천 장소'로서가 아닌, 해외 생활하면서 해본 '색다른' 경험에 초점을 두고 써보기로 했다.


👀 단순 호기심에 의한 방문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찍어본 맞은편 모습.

보통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기 전, 미리 인터넷으로 사전조사를 하거나 평소 길 가다가 그 앞을 지나갔을 때 흥미로워 보였던 곳을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뒤 가보는 편이다.

이곳은 예전에 몇 번 그 앞을 지나가기만 했었는데, 동물 보호와 동물의 권리에 대한 엄격한 유럽의 법을 뚫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프랑스의 캣카페는 어떤 곳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평소처럼 구글 리뷰를 살펴보았는데, 약 1200개의 리뷰가 있는데도 평점이 매우 높았다.

원래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고를 때, 단순히 별점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어 보이는 리뷰들 몇 개를 읽어보고 참고하는 편인데, 이곳은 큰 기대를 갖는 것보다는 그냥 경험 삼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Chat [샤]는 프랑스어로 고양이를 말한다. 방문 가능한 최소 연령은 10세.
2016년 처음 문을 연 티하우스. 버블티가 있어 신기했지만, 이곳에서 그거까지 주문할 용기가 나진 않았다.


⌛️ 20분이 넘는 대기 시간

카페 안 데코의 대다수가 일본의 것들이 많았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던 순간만 해도, 잠깐이지만 금방 준비된다고 친절하게 맞아주실 때만 해도, 대기 시간만 20분이 넘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앞에 있는 목조 창살문을 통해 내부를 대충 살펴볼 수 있었는데, 얼핏 보니 테이블 수가 아주 많아보이지도 않았고, 안에 있는 사람의 수도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은 것 같았으며, 대기하고 있는 사이 몇몇 사람들이 계산하고 떠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번 왔다갔다 하던 사장님의 '방금 가신 분들 테이블 정리 중이라, 30초만 있다가 바로 들어오실 수 있을 것 같으니 좀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이 또 다른 10분의 기다림을 의미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아무리 유럽이 막연히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자리가 비었는데도,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서 테이블 하나를 정리하는 데 그렇게까지 오래 걸린다는 건... 말을 아끼기로 한다.

고양이들을 위해 지켜야 할 사항들을 내부 문 앞에 명시해두었다.

⚠️ 고양이들을 만지기 전에 구비된 손소독제로 손을 깨끗이 씻을 것, 고양이들은 인형이 아니니 들지 않을 것, 고양이들의 건강을 생각해 먹이나 마실 것을 주지 말 것, 조용해야 하니 너무 크게 떠들지 말 것, 사진 찍을 때 플래시를 터트리지 말 것, 아동 동반 시 고양이들이 무서워할 수 있으니 아이들을 잘 감시할 것,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45분 이상 머물지 말 것.
....
"N분 이상 더 기다릴 필요 없음"이라는 항목을 추가해 주고싶다.

두 문 사이에 있는 작은 대기 공간에서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이 들어와도 된다고 할 때까지 이 나무 창살문을 열면 안 된다.
손님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할 순 없어 보였는데도, 25분은 대기했다. 대기하면서 몇 번이나 그냥 나갈까 했지만 기다린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 아까워 결국 머물게 되었지만 그냥 갈걸 했나 싶기도 하다...


☕️ 음료

카운터에서 일하고 계신 남자 사장님과 빙글빙글 돌고 있는 핫초콜릿. 왼쪽 벽 위에도 고양이가 올라가서 웅크리고 자고 있다.

차례가 되어 안쪽 테이블로 안내받은 뒤만 해도, 주문을 하고, 음료를 받는 데에 또 얼마나 기다리게 될지 알지 못했다.

메뉴를 받고,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고 잠시 사라지시고 우리는 또 기다려야 했다.

같이 갔던 일행 중 두 명은 홈메이드 핫초콜릿(chocolat chaud fait à la maison)을, 나는 카페 안 워낙 일본 그림들이 많고 해서 그 분위기에 이끌려 "사쿠라 그린티(thé vert sakura)"를 주문했다.

메뉴에는 라즈베리 쿨리(coulis)를 얹은 치즈케이크, 브라우니 등 여자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몇 가지 디저트도 있었지만, 크게 와닿는 것은 없어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했다.

홈메이드 핫초콜릿은 총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 카페의 시그니처라고 한다. 이탈리안식 핫초콜릿으로 굉장히 짙고 걸쭉해서 취향에 맞게 우유를 부탁하면 섞어주신다.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같이 갔던 프랑스인 일행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상당히 불편해보였다...

✔️ 내부 분위기
더불어 전반적 분위기가 데코를 다소 '형식적'으로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고양이들의 동선을 고려한 선반 등 '기능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둬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 벽에 붙어 있는 고양이 그림들도 뭔가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한 곳에서 한꺼번에 사서 붙여놓은 듯 보였다.
두 사장님 부부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이시라 직접 벽 공간을 채우신 것 같은데, 데코 부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더 분위기가 개선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고양이들

주문하기 전 각각 이름이 쓰인 고양이들 사진을 보며 각 고양이의 이름과 고양이들 사이 가족관계 등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그 모습을 보며 매일 저렇게 똑같은 소개를 오는 사람들마다 반복해야 하는 사장님의 노고가 상상되었다.

 

그런데 고양이들 구경하러 온 캣카페에 완전한 고양이의 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잠만 자던 녀석 딱 한 마리만 보였고, 나머지는 모두 바구니나 나무 박스 안에서 자고 있어 그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묘한 허무함이 느껴졌지만, 그냥 자고 싶은 고양이들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그러면서 혼자 "고양이 카페" 개념 자체가 과연 누굴 위한 것인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캣카페라기보다는 그냥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운영하시는 일반 카페에 고양이들 여러 마리를 키우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같이 갔던 일행 중 한 명은 '일부러 사람들이 못 만지게 다 수면제라도 먹여서 잠들게 한 거 아니냐'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고양이.

고양이들을 주요 콘셉트로 한 카페를 운영하려면 섭외된(?) 고양이들의 성격도 어느 정도 반영이 충분히 되어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인간에게도, 고양이에게도 서로 불편해지니까.

인간처럼 고양이들도 성격이 제각각인데 그중에 예민하거나, 내성적이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에게 자꾸 예쁘다고 와서 만지려 하고 가만 두지 않으면 고양이들에게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조용한 고양이들도 있지만, 캣카페에는 아무래도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녀석들이 있어야 관심을 주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와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의 수요가 적절하게 들어맞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고양이를 많이 좋아하시는 부부 분들이 운영하시는데,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과 비즈니스 아이템으로써 고양이가 주요소인 캣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순서가 되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두 손은 다 미리 닦으셨죠?"라고 위생 확인까지 했던 사장님의 말과 벽을 가득 채운 카페 고양이들의 사진이 무색하게 우리는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한 마리 보지 못하고 왔다.

캣카페가 아니라 그냥, 카페에 와 있는 듯한 느낌.

이 정도면 느긋하게 돌아다니다가 마주치면 교태 부리는 동네 고양이들을 만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결국 음료만 (최대한 빨리) 마시고 그냥 나가기로 했다.

입구로부터 우측에 마련된 화장실.


마무리

물론 단 한 번 방문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일 확률이 있지만, 결국 이 장소는 고양이를 위한 곳도,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곳도 아니지 않나 싶은 인상만 남겼던 곳이었다.

'조용함'이 필요하다고 하는 고양이들에게, 매일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러' 이곳을 찾는 것이 어딘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모습을 보기 힘들지만 여러 고양이들이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건, 카페 자체보다 애묘인 방문자들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과 관용에서 기인한 게 크지 않을까 싶다.

카페 운영하는 것이 고된 일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면서, 고작 음료 한 잔 마시고 까탈스럽게 굴면서 얄팍한 '손님 행세'하고 싶진 않지만, 어딜 가든 되도록 좋은 면 위주로 보고 싶지만, 사장님 두 분 내외의 친절함과 캣카페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 홈메이드 음료와 디저트를 제공한다는 것 외의 고양이 카페로서의 장점은 크게 찾기 어려워서 아쉬운 경험으로 남았다.

아무래도 유럽에서의 캣카페 체험은 한 번으로 충분한 것 같다(라고 하면서 이 글을 쓰고 나서도 시내 다른 캣카페도 찾아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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