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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파리에서의 하루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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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지역으로 이사 온 이후 처음으로 기차 타고 파리까지 다녀왔다.

오랜만에 파리 구경(개인적으로 파리를 그렇게 좋아한 적은 아직까진 한 번도 없다) 간 것이 아니라, 개인적 이유로 필요한 서류 발급을 위해 주프랑스 파리 영사관에 갈 일이 있어서였다.

지난주 수요일, 일부러 모든 일정을 비우고 보르도 Saint-Jean 기차역에서 오전 8시 40분 기차를 타고 갔는데, 보통 보르도-파리는 떼제베(TGV)로 두 시간 정도 걸리지만 시간대에 따라 중간에 멈추는 역이 있을 경우 좀 더 걸린다.

이 날은 오전에는 2시간 50분, 저녁에 돌아올 때는 2시간 45분 정도 걸렸다. 


주프랑스 대한민국영사관에서의 서류 발급 미션

영사관에 거의 도착해 가는 길에서 후다닥 대충 찍어본 에펠탑의 사진. 에펠타워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비오는 날임에도 열심히 에펠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본 파리였는데, 그전에는 대부분 더운 여름날에 갔었을 때가 많아서 그런지 비가 내리는 파리의 모습이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았다.

최근 개인적인 이유로 출생증명서 서류가 필요하게 되어 파리에 있는 대한민국영사관에 가게 될 일이 생겼다.

한국 핸드폰 번호로 연동된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등 다른 기타 인증 수단이 다양해졌는데, 하필이면 한국 핸드폰 번호를 일시정지 해놓고 온 데다가 카톡도 프랑스 번호로 연동해 놓아서 결국 직접 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바쁜 와중에 파리까지 가야되나 싶다가도, 다른 지역에 살았으면 훨씬 더 멀었을 거고, 그나마 편도 2시간 정도면 그리 나쁘진 않다는 것, 그리고 하루 정도 파리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오기로 했다.

 

파리 몽파르나스역에 도착해 바로 메트로 Ligne 6의 Tracadéro [트로카데로]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한민국영사관으로 걸어갔다.

이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어서 가는 길에 멀리서 그 건물을 한 번 보고 다시 구글맵을 보고 뭔가 잘못 찾은 게 아닌가 싶었다.

얼핏 보기에 아파트 건물 같아보였기 때문인데, 동네 위치상 그러한 스타일의 아파트가 있기엔 애매하여 자세히 다가가 태극기가 보여 그때서야 안심하고 열려있는 외부 철창문으로 들어갔다.

 

여권을 복사하고, 출생증명서 (프랑스의 경우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기본으로 한다) 신청서 양식을 작성하고 나서, 근처 우체국을 찾아 반송봉투를 사서 갖다 놓았다.

그러고 나서 담당자분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영사관에서 매년 2회 정도 프랑스 내 지방 순회를 돌고 그때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주최한다고 알아볼 것을 추천해 주셨다. 프랑스에 있는 한인회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는데, 최근 새로운 보르도한인회 분이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해주고 계신다고 하셨다. 최근 한국 문화 인기가 높아지면서 여러 프랑스 행정기관들도 프랑스 내 한인회와 함께 한국 문화를 홍보, 촉진하는 행사를 공동 주최하고 싶은 의사를 여러 차례 비췄는데, 하필 니스를 비롯한 프랑스 남동부 쪽은 한인회가 부재한 상태라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다고 덧붙이기도 하셨다. 그리고 프로방스 지방은 유명 지휘자 정명훈님이 회장을 맡고 있다고 귀띔해 주셨다.

한인회 가입에 대한 여러 가지 장점을 설명해 주셔서 솔깃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파리의 우정 한식당 Woo Jung

파리에서 가장 '클래식한' 스타일의 한식을 제공하고, 파리의 대표 한식당으로 알려졌다는 우정 식당.

친절하신 영사관 직원분이 영사관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식당 몇 곳을 추천해 주셨는데, 그중 다른 것보다 일단 위치가 가장 가까워 가게 된 곳이다.

나오고 나서 친구를 기다리는 사이 구글맵에 찾아보니 문 닫는 시간이 2시 30분이었는데 이미 1시 반이 조금 넘은 터라 그냥 이곳을 가버리기로 했다.

내가 시킨 30유로의 돼지불고기백반. 버섯과 양파를 같이 넣고 볶았는데 양념이 부족해서 좀 건조했던 것이 아쉬웠지만 간은 적절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유럽에 살면서 한식당을 많이 찾지 않는다.

재료와 온갖 식기구와 용품 조달이 워낙 복잡한 일이기도 하고, 온갖 어려움이 많이 따르는 게 요식업이라는 걸 알지만, 유럽에서 한식당에 다니면서 매우 만족스럽게 식사를 한 경험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에도 적당히 맛있고, 적당히 정갈하고 깔끔하게 하는 한식당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꼭 대단한 식당이 아니더라도 적당히 괜찮은 식당이 유럽에 있는 한식당들보다 낫다고 생각되었던 경험이 더 많았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섣불리 일반화할 필요는 전혀 없다).

친구가 시킨 양념게장백반. 게장엔 원래 야채를 넣지 않는 것이 정석인데, 외국인들을 위해 심심해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한국 문화를 무척 좋아하고, 한국 여행을 한 적도 있는 프랑스인 친구가 특히 좋아하는 한식 중 하나인 양념게장을 주문했다.

들떠서 먹는데, 한국에서도 5~6만 원은 기본으로 줘야 하는 게장을 아무리 소량이라도 백반으로 30유로가 나오려면 냉동 재료일 것임이 분명했다.

양념게장을 손을 사용해서 먹는다는 것을 아는 친구는 물티슈나 식사하면서 손을 닦을 수 있는 일회용 티슈 같은 것을 물어봤는데 전혀 없다고 하셔서 조금 당황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본 세팅되어 있던 면 냅킨에 계속해서 손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양념게장 주문 전용으로라도 일회용 티슈나 물티슈가 구비되었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파리 우정식당의 돼지불고기백반.

전체적으로 정갈한 느낌이 묻어나는 한식당임은 분명하다.

분위기도 조용하고, 화이트 테이블보에 서비스도 포멀하게 화이트 셔츠에 블랙 팬츠를 입은 차분한 남성 두 분이 격식을 갖춰 서빙해 주셨다. 

그러나 식당이 위치한 구역이 에펠타워 근처의 자릿값이 비싼 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재료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나뉘어야 할 메뉴들 사이 큰 차이가 없이 30유로로 거의 통일한 듯한 식의 가격은 한국인으로선 의아한 부분이었다.

평소 개인적으로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면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돼지불고기백반과 양념게장백반이 30유로, 제육볶음이 29유로인 등 메뉴판에 적혀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재료에 따라 가격 차별이 없이 모두 30유로로 가격 설정을 하신 것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한식을 먹는다고 한껏 들떠있던 친구도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역시 유럽에서의 한식당 경험은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게 되는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는데, 한 번 정도 경험해 본 것으로 만족한 곳이었다.

기본적인 한식 메뉴에 가격대가 있는 편이라, 연령대가 있는 고객층들이 더 많이 찾을 것 같다.


🍕 파리, Manhattan Terrazza

펑키한 스타일의 페인팅 아트로 차분한 분위기의 파리 서쪽 지구에서 단 번에 시선을 끄는 이곳.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땐 관람 하면서 시원한 맥주, 나폴리 피자, 바삭한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다고 유혹하고 있다(?)

사전에 미리 알아보고 나름 나만의 필터링을 거쳐 검증된(?) 곳을 가는 걸 선호하는 나와는 달리 어디든 내키면 그냥 들어가고 보는 친구가 가고 싶어 해서 가게 된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파리에서도 부유한 동네여서 그런지 주변도 깨끗하고 안전한 편이라 물건 분실에 대한 불안감도 덜했다.

레스토랑 곳곳을 상당히 아메리칸스러운 스타일의 벽화와 그래픽 아트를 채웠는데, 형형색색의 의자와 조화를 이룬다.

주변의 클래식 프렌치 스타일의 건물과 레스토랑, 카페들 사이에서 굉장히 과감하고 튀는 스타일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드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린 날이라 화사한 컬러들로 가득해 독보적으로 눈길을 끌었던 곳. 테라스 자리도 있고 실내에도 꽤 많은 테이블들을 보유하고 있다.
캡모자를 거꾸로 쓴 분이 사장님 같아보이셨는데, 늘 부드러운 미소로 친절하게 응대해주셔서 잠시 파리에 와 있다는 걸 깜빡할 정도였다(?)

일단 식사를 하고 나서 조금 걷다가 들어간 곳이라, 일단은 가볍게 음료를 마시기로 했다.

친구는 해피아워로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맥주를 마시고, 나는 이탈리안 로제를 두 잔 마셨다.

그렇게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와 평소보다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고 이곳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인걸 알고 피자를 시키기로 했다.

키친은 18시부터 오픈이지만 피자는 언제든 주문 가능하다고 했는데, 보르도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7시 반쯤이라 여유 있게 저녁을 일찍 먹기로 하여 6시 조금 전에 피자를 주문했다.

4가지 치즈를 올린 마게리타 치즈. 평소 꽈트로피자를 좋아해서 그 생각을 하며 시킨 피자.

피자에 대한 취향이 확고한 나는 평소 가공육이나 크림류 소스가 올라간 치즈는 일단 배제하는데, 반면 아티초크나 버팔로 모짜렐라가 올라가면 주문한 순간부터 두근두근 설렌다 (참고로 파스타보다 피자를 더 좋아한다 🍕).

이곳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는 사이 키친 안쪽에 큰 화덕이 있는 걸 보고 더 기대가 되었다.

18유로의 4가지 치즈를 올린 마게리타 피자. 생방울토마토와 바질, 올리브오일로 마무리 했다.

그렇게 주문하고 나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바로 뜨끈하게 동실동실하게 크러스트 부분이 부푼 피자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프랑스에도 피자의 높은 인기는 예외가 없는데, 이탈리안 스타일의 피자를 만드는 곳들도 많지만 프랑스식으로 재해석해서 만드는 곳들도 많다. 특히 이탈리아 치즈보다 전형적인 프랑스 치즈를 올리거나 토마토소스 대신 크림을 쓰는 것도 흔한데, 실제 이탈리아에서 정통 이탈리아 피자나 까르보나라와 같은 크리미한 파스타에는 크림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부드럽고 담백한 버팔로 모짜렐라에 소스처럼 피자를 찍어먹었을 때 입 안 한가득 맴도는 그 만족감!

프랑스에서 먹는 화덕 피자는 위의 사진처럼 코르니시오네(cornicione)라고 불리는 피자의 엣지가 도톰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이처럼 나폴리 피자는 반죽이 특히 중요한데, 쫄깃쫄깃한 정도가 딱 적당해야 먹기 좋다.

코르니시오네는 보통 많이 먹지 않고 반죽 맛이 궁금해서 조금씩은 맛을 보는 정도인데, 버팔로 모짜렐라에 찍어 먹었을 때 고소하고 담백함이 기분 좋은 맛이었다.

친구가 한창 배고팠을 때 먹은 30유로 한식 점심보다, 배고프지도 않았을 때 먹은 20유로도 안 되는 이 피자가 훨씬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을 때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어로 balancoire [발랑수아르] 라고 하는 그네.

처음에는 장난 삼아 그네 의자에 앉아 봤는데, 막상 앉아 보니 재미있어서 아예 그네 의자 자리로 테이블을 잡았다.

대화하는 내내 서로 엉덩이를 움직여 의자를 앞뒤로 조금씩 왔다 갔다 했는데, 오히려 내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그네 의자 자리는 외부 테라스 공간에만 있는데, 처음에 앉으면 앞으로 확 쏠릴 수가 있어 가방은 사람들이 오지 않은 옆 테이블 의자 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몽파르나스역 Gare Montparnasse

보르도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찍은 사진.

영국에서 유학 생활 중 즐겨 찾았던 PRET (Ready to eat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Prêt à manger"의 줄임말로, 보통 영국인들은 [프렛]이라고 부른다)가 언젠가부터 프랑스의 공항과 역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샌드위치는 정말 영국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맛있는 곳들을 찾아야 한다) 프랑스에도 생겨서 반갑지만 보르도 시내 쪽에는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PRÊT의 생당근주스와 계란, 토마토를 넣은 샌드위치를 좋아하는데 이날은 아쉽게도 이미 이른 저녁을 먹어 배부른 상태라 반가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안녕👋 다음에 또 만나). 

공항에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던 몽파르나스역.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비하면 정말 정말 깨끗하고 안전하다.

7시 40분 보르도 Saint-Jean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스페인어책을 꺼내 공부하다가 잠시 눈을 감고 쉬었더니 어느덧 역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했더니 거의 12시가 다 되어 씻고 바로 잤는데, 이날 오전 6시부터 내내 깨어 있고 기차 타고 오랜만에 하루종일 내내 밖에 있었더니 그다음 날까지 피로함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볼일이 있어 파리에 간 거라, 사진을 찍을 생각도 별로 안 했고 내내 비가 내려 구경 다니기도 어려웠지만, 언제 한 번 주말에 가서 당일치기나 토요일-일요일 단기로 여행하고 와도 괜찮을 것 같다 싶었다.

구경 다닐 곳이 많은 나라에 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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