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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Europe

패션프룻 모히토와 사르디나스(정어리 절임)로 남부 유럽 분위기 만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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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유럽스러운 경험들은 대부분 생활을 둘러싼 소박한 순간들에 최대한 집중하고, 그 안에서 찾는 즐거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자연이나 도시 환경을 구경하면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내는 것과 같은 단순하지만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들.

물론 어딜 가든 있는 것이지만, 먹는 것을 '취미'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일종의 '활동'으로 여기는 경우가 흔한 한국에 비해 유럽에는 정말 그 순간 그대로를 즐기는 것에 집중하는 문화가 있다.

 

단순한 맛집 소개 보다는 대단한 건 없지만 '여유'라는 사치를 부려보는 어느 8월 날의 여름날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이번 포스트를 써보기로 한다.


시청 근처 로앙 광장에 위치한 Le Cafe Rohan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이번 포스트는 보르도 맛집 소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맛집 카테고리에 넣을 만한 큰 장점은 딱히 없는 le Cafe Rohan은 근처를 배회하다가 어쩌다 한 번씩 가끔 들르게 되는 곳이다.

가격이나 음식/음료의 질이 우수한 것도 아니지만, 그저 시청(Hotel de Ville) 근처 로앙 광장 목 좋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야외 테라스 자리에는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마주보고 앉는 테이블들도 있지만 옆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테이블들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카페/바의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전에도 포스팅한 적이 있는 시청 건물이다.

메뉴는 나름 아페리티프, 식사, 디저트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 편이고, 선택할 수 있는 음료의 종류도 꽤 많다.


패션프룻 모히토

 

중간중간 구름에 해가 가려졌던 8월의 어느 여름날. 그래도 여름날 이렇게 테라스 자리에 앉아서 시원한 음료를 즐기는 순간은 늘 소확행 모먼트 그 자체이다.

평소에는 따뜻한 차를 마실 때가 많지만, 최근 들어 평소 잘 마시지 않는 것들을 마시는 시도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익숙하고 잘 아는 것들만 더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이기에, 나름 나도 모르는 사이 관성에 젖지 않기 위한 일종의 작디작은 노력이랄까.

레몬/라임즙과 민트 잎, 패션프룻청 등을 넣고 만든 시원한 패션프룻 모히토.

평소에는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는 것들에 대해 절제를 습관화하는 편인데, 그래도 가끔 한 번씩은 평소 습관대로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작은 일탈을 할 때가 있다.

원래는 대낮에 알코올은 되도록 자제하는 편인데, 휴가 기간이기도 하고 해서 시원한 모히토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참고로 8월의 프랑스는 한창 바캉스 시즌이라 다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최대한 휴가 기간 내내 누릴 수 있는 여유와 재미는 모두 만끽하려는 분위기이다)

 

모히토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그중 평소 좋아하는 패션프룻맛이 있어 망설임 없이 패션프룻으로 골랐다.

바싹 말린 라임 슬라이스를 올린 모히토.
말린 라임보다 그냥 생 라임을 넣어주셨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더운 여름, 주로 멜론과 수박으로 더위를 식혔다면, 유럽에 있는 동안은 시원한 맥주나 모히토 같은 가벼운 칵테일에 간단한 아페리티프를 곁들이는 편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직접 럼을 사다가 모히토를 만든 적이 있는데, 오렌지향이 나는 시럽도 넣고 하면 위 사진과 비슷한 색이 감돈다.

역시나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어느새 금새 알딸딸해짐을 느낄 수 있는데, 짭조름한 프로방스 스타일의 올리브 절임이나 하드 치즈, 나초, 구운 파프리카 등과 같은 아페리티프와 잘 어울린다.


Sardinas

올리브 오일에 절인 정어리, 레몬, 담백한 빵과 버터. 소박한 구성인데도, 여름의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고기보다는 해산물이 더 좋을 정도로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유럽에 오고 나서 더 즐겨 먹게 된 생선 중 하나로 정어리가 있다.

가격도 워낙 저렴해서 종종 마트에서 생물 정어리를 사다가 구워 먹기도 하고, 다양한 소스와 맛으로 판매되는 정어리 통조림을 사다 먹기도 한다.

 

고등어와 마찬가지로 등푸른생선과에 속하는 정어리는 고등어보다는 살도 더 야들야들한 식감에, 좀 더 가볍게 먹기에 좋다.

고등어는 일정량 먹다 보면 묘하게 살짝 더부룩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정어리의 맛이 좀 더 섬세하지 않나 생각한다.

캔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사르디나스.

아무튼 정어리 절임, 사르디나스를 주문했다.

(참고로 sardine은 정어리를 말한다)

같이 간 친구는 맥주에, 나는 모히토에 곁들여 먹었는데, 그야말로 여름 별미라고 해야 할까.

참 소박한 것들만 놓여 있는데, 그냥 너무 맛있는 것이다(?).

꼭 프랑스 남부가 아니더라도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남부 어딘가를 여행한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 보길 추천하고 싶을 만큼 괜찮은 조합이라 할 수 있다.

같이 나온 빵에 버터를 발라도 괜찮고, 안 발라도 괜찮은데, 그 위에 정어리 살을 올리고, 살짝 레몬즙을 뿌려준 뒤 먹으면... JMT(분명 의도된 대문자이다)이다.

오일에 절여져 부드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염도가 밴 정어리에 레몬즙으로 적당한 산도를 잡아주고 담백한 빵으로 전체 맛이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거기에 모히토 한 잔을 마셔주면... 그야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정어리처럼 작은 생선에는 가시가 있어도, 이미 절여진 상태이기도 하고 먹어도 크게 지장이 없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을 좋아하는 이라면, 안주류 음식을 좋아하는 이라면, 분명 이 조합에 크게 찬성할 것이라 장담한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빵은 흰 빵보다는 통밀빵이나 깜빠뉴빵처럼 좀 더 담백하고 곡물의 맛이 더 잘 느껴지는 빵을 곁들여 먹는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점점 줄어가는 빵과 정어리. 크게 기대하지 않고 먹었다가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참, 이렇게 작은 걸로도 행복해지는 나란 녀석, 참 단순하기 그지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빵에 올려 먹는 올리브오일에 절인 정어리(매우 지중해식스럽다). 강추 또 강추한다.


더운 여름날에는 대단한 걸 먹는 것보다, 오히려 깔끔하고 소박한 재료들을 잘 조합한 심플한 음식이 생각날 때가 더 많다.

원래 다른 이들에게는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심심한 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여름에는 염분이 좀 더 있는 음식을 먹어주려 한다.

사실 한국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기 때문에, 잘만 차려 놓으면 유럽에 가지 않고도 손쉽게 유럽 여행하는 느낌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9월 가을이 다가오기 전, 단맛이 강하지 않은 시원한 칵테일 한 잔에 사르디나스, 올리브 같은 깔끔한 음식으로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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